ISSN : 1229-4632
최근 들어 당사자가 특정 시점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자기서사가 문화적 우세종이 되고 있다. 특히 젊고 아픈/미친 여자들이 저자로 출현 중이라고 할 만큼 질병과 광기에 관한 자기서사는 급증하고 있는 중이다. 자기서사 현상은 여성/소수자가 더 이상 가부장제의눈치를 보거나 정상성 규범에 주눅들지 않겠다는 의지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이 자기 노출을 감행하는 것은, 페미니즘 지식이 대중화·보편화되고 페미니스트 ‘사회자본’이 형성됨으로써 ‘완벽한 여성’이라는 환상에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다. 자기서사 현상은 자기 자신의 삶을 무대화함으로써 비규범적인 여성 정체성을 형성하는 문화적 실험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글은 아프고/미친 젊은 여자들의 자기서사 중 거식증에 관한 이야기를 분석한다. 『이것도 제 삶입니다: 섭식장애와 함께한 15년』과 박지니의 『삼키기 연습』은 질병/광기는 단순히 정상성을 이탈한 증거가 아니라 젠더 규범성과 여성의 갈등을 함축한 것으로 자기서사의 여성주의적 급진성을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