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임옥인의 일부 소설은 가부장제에 순응적이면서 한편으로 그것의 모순을 비판하는 이중적이고 착종된 시선이 한 작품 안에 공존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이글에서는 바이겔(Sigrid W igel)의 ‘사팔눈의 시선(Der schilende B lick)’, 수전랜서와 보리스 우스펜스키의 관점과 태도로서의 시점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러한임옥인 소설의 이중성이 어떤 서사적 장치와 서술심급을 토대로 형성되는지를살펴보았다. 「후처기」는 자존심 강한 주인공의 내면을 내적 초점화를 통해 상세히 서술하면서 서술자와 인물의 거리가 그 어떤 소설보다도 가깝게 설정되어 있어 독자의 공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결말부에서 보이는 극단적 정도를 나타내는 수식어구 삽입과 조감자적 초점화자의 위치로의 변화를 통해, 서술자와 인물 사이의 소원함의 거리가 늘어난다. 이는 여전히 전처의 자식에 대해 ‘위험한’ 질투와 경계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주인공이 당시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격리될 수밖에 없다는 내포작가의 냉정한 현실 인식이 개입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전처기」 역시1930년대 중후반 여성지 독자들에게 인기 있던 서간체 양식이 사용된 소설로, 수신자인 남편과 발화자인 여성 주인공 사이 ‘복종–멸시’의 양극단의 축을 교차적으로 오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주인공의 남편에 대한 절절한사랑과 극단적 원망을 교차적으로 전경화–후경화하고, 아이를 낳지 못해 후처를맞이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당시 관습에 대한 주인공의 날카로운 비판을수용하고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임옥인이 월남 이후 작가, 생활인으로서 안정되던 시기에 발표된 「현실도피」는 권위적 이종제시 서술자의목소리로 추희라는 주인공의 인생 행로를 도피적인 것으로 논평한다. 그러나 그뒤에는 여성에게는 교육 기회를 주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못할 경우 받게 되는부당한 대우라는 사회적 배경을 제시하고 있어 그 모순을 독자가 감지하도록 만들고 있다. 또한 결말부에 가서 시종일관 추희를 비판했던 이종제시 서술자가 추희의 말을 사용하는 자유간접화법을 사용함으로써, 서술자의 논평과는 대비되는내포작가의 주제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심급 설정과 서술자–인물 사이의 유동적 거리 조절을 통해 작가는 젠더 이데올로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성의 고유한 삶과 감정에 대해 우회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