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현대 여성시에 나타난 ‘빈 몸’의 윤리와 감각화 방식을 이수명, 조용미의 시를 중심으로 읽었다. 이들 시의 ‘빈 몸’과 ‘감각화 방식’에 주목한 것은 여성시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주로 페미니즘을 토대로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시의 ‘몸’은 동양의 노장사상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노장사상에서 ‘몸’은 세계의 기원이자 최고 인식의 자리로서 도(道)를 의미한다. 도(道)는 너무나 큰 것이기에 ‘텅 비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자연/ 여성과 같은 것으로 두 시인의 시에서는 몸의 감각으로 드러난다. 이수명의 시는 ‘보이는 감각’이 지배적이다. 그의 시에서 ‘보이는 감각’은 서경(敍景) 그 자체로 제시되는 이미지로서의 관념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개념화되기 이전, 날것으로서의 자연을 표상한다. 자연은 문명 이전의 야생, 즉 인간의 관념이 개입되기 이전의 세계이자 ‘빈 중심’으로서의 도(道)의 세계와 같다. 도는 유(有)와 무(無)가 상호 공존하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원(始原)의 세계이며, 모든 존재는 스스로의 형상과 행위 자체로 의미화된다. 이러한 제시방법은 시적 자아의 관념을 비움으로써 대상을 ‘전적’으로 살려내는, 무위(無爲)의 윤리를 구현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조용미는 시각뿐 아니라 다양한 감각을 활용한다. 그는 대상을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손의 촉각과 청각을 빌려 대상을 감지하고 수용한다. 그리고 이에 따른 상념을 고정된 질서나 논리적 언어를 벗어나는 글쓰기로 전개하고 있다. 이는 작은 것으로 더 큰 우주를 만나려는 노장적 소요유와도 맥이 닿아 있다. 노장에서 소요(逍遙)는 정신적 자유를 의미하며, 그것은 수양의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 과정을 시인은 대상의 몸과 부대낌을 통해 드러내는데, 이때 몸의 이동과 변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는 결국 참된 나(我)를 회복함으로써 얻어지는 자유를 향한다고 할 것이다. 두 시인의 시는 관념어보다는 구체적 사물을 시각이나 청각, 촉각 등으로 수용하여 노장적 사유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미지만 제시한 근대(모더니즘)적 정신을 뛰어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들의 시는 90년대 이후 여성시의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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