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광주 이후 한국문학은 자기 자신과의 진실한 접촉없이 인간적 존엄을 획득할 수 없다는 듯 자기 심문의 성격을 띤다. 이렇듯 역사의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은 살아남은 자의 마음에 애도의 무대를 설치한다. 프로이트는 대상 상실로 인해 발생한 심리적 어려움을 개인의 감정생활에 국한해 다루었지만 80년대는 우울감이 집단적으로 호소된 시기였다. 애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망자는 영면하지 못하고 수시로 산 자의 세계로 귀환함으로써 살아남은 자를 자책과 무기력 속에 가둔다. 80년대의 수많은 죽음들은 의문에 휩싸여있고 몸조차 편안히 누이지 못해 시공간을 부유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자들은 더욱 우울상태를 벗어날 수 없게 한다. 80년대 세대는 죄의식에 사로잡힌 애도 주체였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는 망자의 죽음을 사회에 등록시킴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이 권리와 의무를 재분배받는 기능을 하는 장례식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이는 연대의 책임을 자각한 공동체적 주체들의 사회참여를 애도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음을 뜻한다. 전후 근대 국가의 형성 이후 여성문학은 가정영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제도적 여성성의 규범에 순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라는 이분법에 갇혀 헌신과 일탈을 경주해왔다. 오정희나 박경리 등 소수의 여성작가들은 ‘성모’ 대 ‘팜므 파탈’이라는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기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동일한 위상기하학을 벗어나기 위해 광녀의 히스테리적 열정을 빌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여성은 희생자 혹은 수난자로서 민족의 위치를 환기시키는 공간 표지물이나 상징의 자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애도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애도의 주체가 될 수 없었다. 이렇게 볼 때 학살의 폭력은 국민/비국민, 남성/여성의 이분법적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여성들에게 제 3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의 희생자들이 조상으로 등록됨으로써 권리와 의무가 재분배되고 역할도 다시 할당된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역사의 비참을 기억하는 상징적 오브제의 자리를 벗어나 양심적 개인의 욕망과 소망에 의거해 이상적 사회를 설계해가는 애도 주체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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