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김승옥의 『보통여자』와 『강변부인』은 도시 중산층의 이상(異狀)적인 성적 행동 혹은 스캔들에 대한 서울판 킨제이 보고서로서 한국 근대성의 은밀한 속살을 들추어내는 대중소설이다. 특히 『강변부인』이 보여주는 강력한 선정성은 독자에게 도덕 과잉의 파시즘 사회가 가하는 무력감과 긴장을 상쇄해주는 쾌락을 선사하는 한편으로 계급적 격차에서 비롯된 열패감을 위안하거나 도덕적 우월감을 안겨주는 것으로 대중소설의 기능에 충실하다. 그러나 이 대중적 장편소설은 현실의 반경 안에서 쾌락과 이익을 저울질하는 중산층 계급의 속물성에 대한 탐구의 성격을 띠고 있어 흥행 코드로서 외설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신분이동을 향한 열망을 현실화할 수 있는 자기통치의 능력을 갖춘 중산층 계급의 뛰어난 계산감각을 가시화하는 한편으로 이상적인 것을 상실한 지리멸렬한 삶 속에 도사린 일탈적이고 불온하기도 한 충동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중 소설들은 개발독재기 서울로 상징되는 욕망의 도시에 입성한 남성 주체들이 자기의 허위를 일깨워주는 ‘여성’이라는 ‘의미 있는 타자’를 상실하고 부권중심적인 가정영역을 중심으로 지배적 남성성을 획득함으로써 ‘건전한’ 속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소설들은 김승옥 문학에서 드물게 여성이 중심 인물로 등장하지만, 여성은 이전 김승옥 소설이 보여준 바와 달리 도덕적이고 신화적인 의미를 상실한 채 지극히 평범한 속물이나, 제어되지 않는 성적 욕망에 사로잡힌 채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혐오의 표상으로 전락한다. 신화의 세계에서 추방된 여성은 언뜻 물질적, 성적 육체를 획득함으로써 일말의 자유를 얻기보다 발전주의 국가의 헤게모니적 남성 주체가 통치하는 가정 속에 편입된다. 이는 김승옥 문학의 남성 주체들이 자기 심문의 원인으로서 여성을 상실함으로써 통속적 이해관계에 맞서 자기 진실성을 확보하는 대신 가부장적 모랄의 주체가 될 것을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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