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김약국의 딸들』은 구한말에서 식민지로 이어지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 김약국 집안의 몰락을 재현한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항구 도시 ‘통영’으로 전근대/근대, 식민/제국, 봉건/자본 등 과도기의 모순과 변화를 응축시킨 토포스이다. 김약국 집안에 도래한 사회적 위기는 조선이 경험한 근대의 비극인 동시에 트라우마이다. 소설은 가문의 몰락 원인을 ‘일본/제국’으로 한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식민지/자본/근대의 가치들이 경합, 충돌할 때 이를 해결하는 내적 구조가 무엇인지 묻는다. 이를테면 ‘검은 연기’로 상징된 ‘외세’의 위력을 통영 사람들은 ‘대원군/민비’ 간의 대립으로 치환시켜 해소하려고 하는데, 김약국 가문도 마찬가지다. 가문의 위기를 해결하고 존속하는 방법으로 성을 억압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예컨대 소설의 첫 장면에서 김봉룡은 ‘노란 머리카락’으로 표상되는 이질성의 기표를 성의 문란으로 생각하며 남성의 실존적 위기로 해석해서 폭력적으로 대응해서 비극을 낳는데, 이 비극은 다시한번 김약국(김성수)대에 이르러 반복된다. 딸들의 성과 사랑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가문의 몰락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테면 첫째 딸 용숙은 남성 경제에 대한 편입해 자본 증식을 도모하고자 하지만 위험한 여성으로 처리되고, 둘째 딸 용란은 전근대/가부장제/기독교 등의 의미 체계를 통해 성이 억압된다. 넷째 딸 용옥은 가부장제의 여성 규범에 순종적이지만, 결국 이로 인해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다. 『김약국의 딸들』은 역사의 구조 변동 속에서 성의 억압에 근거한 가문의 존속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약국 가문은 더 이상 그와 같은 방식으로 유지될 수 없다. 가문의 몰락은 비극이지만, 전적으로 애도되지는 않는다. 근대/식민/가부장이 공모한 남성적 근대의 몰락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김약국이 죽음을 맞이하고, 용빈과 용혜가 집을 떠나면서, 김약국 집에는 미치광이 용란만 남게 된다. 텅빈 기호로 남겨진 용란은 텍스트의 공백이다. 이 공백은 김약국 가문에 남겨진 상징계적 질서의 공백이자 여성적 쾌락의 기입이다. 비극이지만, 슬프지 않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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