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이 글은 금홍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이상 소설의 복잡한 서사 전략 속에서 여성이라는 타자가 “나”와 어떻게 만나는지, 그리고 그 만남에 의해 “나”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여성이라는 타자는 어떤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이 글은 “나”의 타자들이 한결같이 ‘요부’(妖婦, femme fatale)의 이미지를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금홍은 배천온천의 기생이었는데 이상과 만났을 때 그녀는 당시 온천 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매음부였던 것 같다. 이후 금홍은 이상을 따라 경성에 오게 되는데 여기서 그녀는 당시로서는 첨단을 걸었던 “모던걸”로 변신한다. 이러한 그녀에 대해 이상의 친구들은 한편으로는 매혹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강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들은 경성의 모던걸 금홍을 요부로서 대하고 있었던 셈이다. 경성에서 이상은 금홍과 2년 6개월 정도 동거생활을 한다. 이상은 그녀와 헤어지고 난 후 「지주회시」, 「날개」, 「봉별기」 등의 작품을 썼는데 이 작품에서 “나”의 “안해”는 “나”를 흡혈하는 “거미”이자 살인자의 모습을 갖는다. 「지주회시」에서 이상은 금홍을 “거미”에 비유하는데 이는 팜므 파탈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뱀파이어의 모습과 흡사하다. 또 「날개」에서는 속임의 서사원리를 사용해서 그녀를 철저하게 타자화하면서 자신의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요부의 모습으로 그려놓고 있다. 그는 금홍의 정조없음을 비판하지만 그것은 육체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마음의 문제였다. 즉 그녀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안해”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희생당했다고 그리고 있다. 서양의 경우 요부의 이미지는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던 신여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상이 살던 시대에도 여권을 주장하는 신여성이 대두했지만 식민지 조선의 신여성은 그다지 강력하지 못했다. 그녀들은 이념적으로는 새로운 사상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들의 사상을 실현시킬 뚜렷한 경제적 위치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녀들은 여성의 성적 매력을 팔아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신여성의 모습이 당시 남자들에게 줄 수 있는 두려움이란 봉건적인 가족제도를 훼손하거나 남자의 순정을 훼손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이상이 금홍이란 여인이 요부의 이미지로 그리면서 절대애정을 소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