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박완서 소설은 삶의 ‘이면’으로서 ‘내면’적 자아를 부각시키려는 성격화 방식을 보여준다. 이는 전쟁과 분단, 전체주의적인 근대화의 경험을 통해 은폐되고 ‘억압’된 역사적 사실들을 복원하려는 작가의 방법론에서 연유한 것이다. ‘기억’과 ‘복원’의 방법론은 바로 역사적 과정에서 억압된 사실들을 ‘내면’적 자아의 형상으로 복원하려는 작가 나름의 정치적 의도가 전제된 서술방식으로서 ‘이면지향적 사유’와 연관된다. 특히 박완서 소설에서 정치적 의도를 읽어내고, 그것을 통해 문학사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은 ‘기억’하고 ‘복원’하려는 역사적 경험이나 ‘사실’은 단순한 증언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은폐하고 억압하도록 하는 현실의 이해관계까지도 비판하는 현실비판의식과 내면화된 이데올로기의 허위성을 비판하려는 자기성찰이 이 기억의 방법론을 역사적으로 의미있게 한다. 『나목』의 이경과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의 수지는 전쟁이라는 극적 상황을 통해 허구적 ‘가족 관념’에 의해 부정된 자기 삶의 진상(眞相)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관념’은 자기 삶의 근거이기도 하여 자기를 발견함과 동시에 은폐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 상황에 놓임으로써 극심한 내명갈등을 겪는다. 이 내면갈등을 내색하지 못하고 내면에만 담아두어야 하는 인물의 이중적 상황은 인물의 삶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이런 이중적 인물의 성격화방식은 서술의 <역설성>이라 할 수 있다. 자기를 발견함과 동시에 자기를 은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인물의 내면갈등은 자기를 소외된 자, 즉 타자로 인식하는 자기인식으로서 고아의식이 된다.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나 규범의식에 의해 자기가 소외되었다고 여기는 고아의식은 60ㆍ70년대의 전체주의적 ‘근대화’ 과정에서 내면화되었던 획일적인 자아를 부정하고 억압된 자아를 복원하는 자아의 서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