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도』에서 여성인물의 의식을 주목하면 4·3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인식적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 까닭은 여성인물의 의식이 생성되는 자리가 남성의 의식이 놓인 자리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남성이 인식과 발화의 정통성을 독점한 상태일 때 여성은 예외적이고 ‘비정상’적인 자리에서 4·3을 조망한다. 그 결과 여성은 남성 중심으로 직조된 4·3 인식에 대하여 위화감을 느끼고, 여성의 그러한 감각은 4·3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탐색과 사유를 산출하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여성은 현실과 연결된 유·무형의 자원으로부터 소외된 탓에 기존 질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재구성한다. 그러한 이유로 여성의 자리에서 송출되는 ‘역사’에 대한 발화는 기존의 언어로는 번역할 수 없는 형태로 굴절되면서 낯선 언어로 재구성되고 채워진다. 이렇듯 여성의 현실은 안정된 질서라고 여겨졌던 것들을 교란하고 위협하면서 4·3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낸다. 따라서 여성주의적 시각을 통해 4·3을 재인식하려는 시도는 역설적이게도 여성이라는 존재의 실존적 취약성 때문에 대범하고 전위적인 기획이 된다. 이상의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본 논문의 2장에서는 4·3으로부터 여성들의 존재가 지워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추궁한다. 이어서 3장에서는 여성에 대한 『화산도』의 서사적 ‘재현’이 어떠한 문제를 노정하는지 살핀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4·3과의 관계 속에서 여성들의 능동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조명한다. 구체적으로 『화산도』의 여성인물 세 명을 조명한다. 투사 부엌이, 혁명의 연대자인 이유원, 남성의 관념을 교란하는 문난설이 그들이다. 이처럼 『화산도』에 등장하는 여성인물에 주목함으로써 4·3 비극성을 강조하는 방식이 아닌 ‘혁명’으로서의 4·3에 대한 가능성을 사유할 수 있는 틈새를 열어젖히고자 한다.
김석범, 「메시지」,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 역사비평사, 1999, 428-429쪽.
김석범, 김학동·김환기 역, 『화산도』, 보고사, 2015.
김석범·김시종, 이경원·오정은 역, 문경수 편, 『왜 계속 써왔는가 왜 침묵해 왔는가』, 제주대학교 출판부, 2007.
권귀숙, 『기억의 정치』, 문학과지성사, 2006.
김현아, 『전쟁과 여성』, 여름언덕, 2004.
제민일보4·3취재반, 『4·3은 말한다』 1, 전예원, 1994,
제주4·3연구소 편,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 역사비평사, 1999.
제민일보4·3취재반,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 각, 2019.
제민일보4·3취재반, 『4·3과 여성 2, 그 세월도 이기고 살았어』, 각, 2021.
가야트리 스피박,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로절린드 C. 모리스·가야트리 스피박 외, 태혜숙 역,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그린비, 2018, 42-139쪽.
거다 러너, 강세영 역, 『가부장제의 창조』, 당대, 2018.
리처드 로티, 김동식·이유선 역,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 사월의책, 2020.
미하일 바흐찐 외, 송기한 역,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 한겨레, 1990.
미하일 바흐찐, 김근식 역, 『도스또예프스끼 시학의 제(諸)문제』, 중앙대학교 출판부, 2011.
슬라보예 지젝 외, 김영찬 외 역, 『성관계는 없다』, 도서출판b, 2010.
강성현, 「제주 4·3학살사건의 사회학적 연구—대량학살 시기(1948년 10월 중순~1949년 5월 중순)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고명철, 「탈식민 냉전 속 동아시아 하위주체의 ‘4·3증언서사’」, 『탐라문화』 제67호,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2021, 101-125쪽.
권귀숙, 「기억의 재구성 과정—후체험 세대의 4·3」, 『한국사회학』 제38권 1호, 한국사회학회, 2004, 107-130쪽.
권귀숙, 「제주 4·3의 진상규명과 젠더연구」, 『탐라문화』 제45권 0호, 탐라문화연구원, 2014, 169-198쪽.
김성례, 「국가폭력과 여성체험」, 제주4·3연구소 편,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 역사비평사, 1999, 154-172쪽.
김성례, 「국가폭력의 성정치학: 제주 4·3학살을 중심으로」, 『흔적』 제2호, 문화과학사, 2001, 263-292쪽.
김은실, 「국가폭력과 여성: 죽음 정치의 장으로서의 4·3」, 『4·3과 역사』 제18호, 제주4·3연구소, 2018, 189-216쪽.
박경열, 「제주 여성 생애담에 나타난 4·3의 상대적 진실—김인근과 현신봉의 생애담을 중심으로」, 『인문학논총』 제47권,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09, 231-254쪽.
박상란, 「제주4.3에 대한 여성의 기억서사와 ‘순경 각시’」, 『Journal of K orean Culture』 제45호, 한국어문학국제학술포럼, 2019, 301-333쪽.
박필현, 「폭력의 경험과 근대적 민족국가—초기 4·3소설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이론연구』 제63권 0호, 현대문학이론학회, 2015, 225-250쪽.
염미경, 「제주 4·3, 동아시아 여성과 소수자 인권 그리고 평화」, 『4·3과 역사』 제17호, 제주4·3연구소, 2017, 384-391쪽.
오금숙, 「4·3을 통해 바라본 여성인권 피해사례」, 제주4·3연구소 편,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 역사비평사, 1999, 236-258쪽.
오노 데이지로,「제주 4·3항쟁과 역사인식의 전개상: 김석범론」, 『재일 디아스포라 문학』, 새미, 2006, 187-269쪽.
임성택, 「김석범—『화산도(火山島)』의 여성 인물 연구」, 『일본어문학』 제81권0호, 한국일본어문학회, 2019, 219-232쪽.
임성택, 「김석범의 ‘4·3소설’ 연구—작중 인물의 유형을 중심으로」, 전북대학교박사학위논문, 2017.
정원옥, 「끝나지 않은 애도: 4·3사건 피해여성은 말할 수 있는가」, 『4·3과 역사』제16호, 제주4·3연구소, 2016, 215-246쪽.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 편, 『제주 4·3사건 진상 보고서』, 선인, 2003.
한림화, 「살아남았기에 더 고통스러웠던 4.3 제주여성」, 『제주의 소리』, 2018.04.28., <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203829> (접속일: 2020.11.23.)
한림화, 「기조강연: ‘제주4·3사건’ 진행 시 제주여성사회의 수난과 극복 사례」, 『역사의 상처, 문학의 치유』, 제주4·3항쟁 70주년 전국문학인 제주대회4·3문학 세미나(제주: 한국), 2018, 9-38쪽.
허영선, 「4·3의 이 깊은 기억, 아무도 모릅니다—허영선 시인이 만난 제주4·3피해 생존 여성들 여성들의 파괴된 삶이 증명하는 참혹한 역사」, 『한겨레 21:死·삶–4·3을 말한다』 제1204호, 2018.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