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이 글은 일본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종군한 경험을 가진 남성 작가들에 의한 소설 텍스트를분석참으로써 전시하 병사들이 민간 어성들을 강간하는 행위와 그것이 시스텐으로 정차된 형태인 일본군 위안부제도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후루야마 고마오의 「매미의 추억」에 대해서는, 전시하의 황군 병사에게 일종의 환경과 같이인식되고 있던 일본군위안부가, 동시대를 공유하는 "그녀" 혹은 "그녀들"로 재인식된 점을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지였던 한국이나 대만을 시작으로 해, 아시아의 다양한 나라들에서 용기를 내어 대중 앞에 나선 일본군위안부의 증언집이나 저작을 돌아볼 때, 자기의 개인적 체험에만 비추어 "믿을 수 없다" 혹은 "믿을 수 있다"라고 하는 판단에 이르는, 사소설의 상상력의 한계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무라 야스지로의 「메뚜기」는, 전시에 만난 일본군위안부와의 관계를 인간과 인간의 전면적인 관계로서 취급하고 그녀를 작가 자신의 삶과 성의 근간에 접하는 존재로 작품화하고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지점은, 병사와 위안부와의 연애 이야기라고 하는 골조를 가짐으로써, 말하자면 로망화의 수법을 도입함으로써,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쉽도록 만들기는 했으나, "위안부"가 "연인"으로 그려짐으로써 식민지 지배하 여성의 수난을 구조적으로 조명하는 일은 더욱 힘들어졌다는 사실이다. 후지 마사하루의 「통정」은, 전선에서의 "전시 강간" 시에 중국인 여성과 일본인 여성을 바꿔넣어 상상하는 일본인 병사가 등장한다. "생명을 낳아 기르는 성' 으로 보호되어야 할 자국의 아내들과 "배설하는 성' 으로 소비되는 식민지하의 "위안부"나 토벌지에서 우연히 만나는 적국 여성들이, 어느 쪽이나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제국주의의 구체적 현현(顯現)인 제국 군대에 의해 행해지는 전시 강간이, 결국에는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만 하는 존재(=자국의 여인들)까지도 부정해 버리고 마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것은단순한 논리구성 상의 문제가 아니라 자국에 있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여성에 대한 불신감이나, 살아가기 위해 몸을 파는 여성들을 국가가 업자들과 함께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또 한편으로는 그들을 멸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었다고 하는 사실까지 의미하고 있다고하겠다. 일본 제국주의하의 성폭력을 취급한 작품들을 분석하는 작업은, 일본인 여성연구자인 필자로서는 어쩔 수 없이 주체의 분열을 느끼게 되는 체험이지만, "위안소" 혹은 "위안부"를 낳은일본의 상상력에 대해 향후도 탐구를 계속해 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