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노동문학 속의 여성상을 정화진과 방현석의 소설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그것은 크게 세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노동해방의 내일을 여는 투사' 형이 있다. 이 유형의 여성인물은 다시 '동지로서의 아내' 형과 '누이로서의 여성투사' 형으로 나뉜다. '동지로서의 아내' 형은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의 관계에 대한 작가 자신의 진지한 성찰의 결과로서 창조되었다. 그리고 '누이로서의 여성투사'형은 남성작가의 누이 콤플렉스가 일정하게 반영되어 있긴 하지만, 노동해방에 대한 적극적인 전망을 열어가는 가운데 창조되었다. 둘째, 남성노동자의 갈등이 투사된, '흔들리는 동지' 형이 있다. 이 유형의 여성인물들은 남성작가의 투사라는 방어기제를 통해 창조된다. 각성된 남성노동자의 내면갈등이 각성되지 못한여성노동자에게로 투사되면서, 여성인물들은 긍정항/부정항의 이분법 중 부정항에 할당되는 것이다. 이는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여성이 남성의 타자로서 존재해 왔다는 사실과 관계가 깊다. 셋째, '노동운동 바깥의 신데렐라와 탕녀' 형이 있다. '신데렐라' 형은 현장출신 남성 노동자작가의 투사(1%)로서 창조된 인물형인데, 남성 안의 부정적 측연이 타자로서의 여성에게 이전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탕녀' 형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매혹과 혐오라는 양가감정이 투영된 인물형으로서, 여성 육체에 대한 관음증적 시선과 결합되면서 창조된다. 이러한 '탕녀' 형은 여성이 서사가 응시하는 수동적인 대상으로서만 텍스트에 존재해 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세 가지 유형의 여성상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여성상이 있는데, 그것은 텍스트 속에서 침묵당하는 여성상이다. 가령, 정화진의 「쇳물처럼」 (1987)이나 방현석의 「내딛는 첫발은」(1988), 「지옥선의 사람들」 (1990), 「또하나의 선택 (1991)에는 여성인물이 부재하거나있다고 해도 그 역할이 아주 미미하다. 텍스트 속에서 여성이 침묵당하는 현상은 여성들이 사회의 중심적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노동소설 속에서 여성은 침묵당하거나, 침묵당하지 않더라.도 오직 남성의 입을 빌어서만 말할 수 있었다. 때문에 긍정적인 여성상은 노동해방에 복무하는 여성상밖에 없었고, 나머지 여성상은 남성의 내면 갈등이나부정적 속성, 성적 욕망이 투사된 결과로서만 형상화되었다. 그러므로 노동계급 여성의 진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여성 노동수기에 눈을 돌릴 필요가있다. 본격적인 노동문학의 출현 이전에 이미 1980년대 초반에 다수의 여성 노동수기가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87년 민주화항쟁을 거치면서 나온 수기들이나 남성노동자들의 수기들을 제외하더라도 다수의 여성 노동수기가 이미 80년대 노동문학의 탄생 이전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남성작가의 노동소설이 안고 있는 여성형상화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