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전 세대에 걸쳐 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박완서 소설은 꾸준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한국 전쟁의 반복되는 소재 속에서 계몽성과 동어반복적인 내용 구성으로 오해를 받고 있다. 본 연구는 이 지점에 착목하여 한국전쟁 체험을 소재로 하는 박완서 소설에 내재된 반복과 차이의 의미를 재구하고 작가의 서술 의도를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무엇보다 박완서 문학의 특징은 소설의 동시대적인 현실과 병행되는 기억의 재현과 그 미묘한 변주에 내포된 한국전쟁의 의미를 재고하는 데에 있다. 전쟁 체험 소설에서 작가는 단순한 소재적 반복이 아닌 해당 텍스트가 창작되던 시대와의 상호작용 및 동시대 독자와의 소통을 추구하면서 전쟁의 일상을 재조명하는 반복과 차이의 의미 분화를 기획한다. 1970년대 박완서 소설은 전후 복구와 근대 산업주의 논리에 은폐되었던 전쟁 체험을 통해 전쟁의 결과로 탄생한 사회적 약자를 재생산하고 계급의 위계를 공고히 하는 공모의 논리를 고발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이라는 전쟁 체험 세대의 수렴과 발산의 감각에 주목한다. 80-90년대 소설에서는 유년기 전쟁 체험 세대가 등장하여, 전후의 문제를 당사자적으로 극단화 하거나 혹은 체념과 용서로 봉합하는 전쟁 세대와 타자의 기억을 소비하고 억압하면서 외부자로 안도하는 미체험 세대를 모두 비판한다. 이 시기 소설에서 작가는 현실 논리에 압도된 전후의 기억을 복원할 필요성과 더불어 전쟁을 실감하는 세대 갈등을 예각화하며 공감의 난망을 드러낸다. 이후 휴전이 고착된 2000년대는 전쟁 체험 세대의 노년화와 전쟁 체험의 세대적 공백기의 특성을 보인다. 이 시기 박완서 소설의 전쟁 체험은 말년성의 갈등과 부조화를 감내하며 이를 저항의 동력으로 삼는다. 휴전 중인 당대 현실에 무관심한 대중을 향해 작가는 직설화법으로 증언하지 않을 권리를 선언한다. 발화의 포기 자체를 선택하는 작가의 능동성은 증언을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 발화 행위와 비행위, 부정과 긍정 사이의 모호함을 가시화하면서 전후 현실에 대한 독자의 책임 의식을 환기시킨다. 이로써 전쟁체험의 기억을 대중과 공유하고 전쟁의 재발을 막고자 하는 작가의 반전 의식이 소설적인 재현의 반복을 추동한다면, 정전의 물리적 거리를 실감하고 독자의 세대적 변화를 포용하는 작가의식은 차이의 서사를 구축함을 확인할 수 있다.
박완서, 박완서 소설전집 2 『목마른 계절』, 세계사, 2012.
박완서, 「엄마의 말뚝3」, 박완서 소설전집 11, 『엄마의 말뚝』, 세계사, 2012.
박완서, 박완서 소설전집 12, 13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2, 세계사, 2012.
박완서, 박완서 소설전집 19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세계사, 2012.
박완서, 박완서 소설전집 20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세계사, 2012.
박완서,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1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문학동네, 2013.
박완서,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2 『배반의 여름』, 문학동네, 2013.
박완서,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4 『저녁의 해후』, 문학동네, 2013.
박완서,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7 『그리움을 위하여』, 문학동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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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인터뷰, 「또다시 전쟁을 보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 <인터넷 교보문고> (http://news.kyobobook.co.kr/people/interviewView.ink?sntn_id=2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