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1950년대는 식민지기와 비교해서 수적으로 많은 여성 작가가 데뷔해 문단과 독서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던 여성문학의 르네상스기였다. 그러나 1950년대 여성문학은 “부르주아 여류”라는 명명(命名)의 젠더 정치로 인해 적극적으로 평가되지 못했다. 더욱이 모윤숙, 최정희, 장덕조, 손소희등 여성문학 장에서 주류를 차지한 작가들은 연성(軟性)의 힘을 동원한 전쟁에서 ‘전사로서의 남성성’을 찬미하며 전쟁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문화 활동에 나서 한반도에 냉전체제가 형성되는데 공모했다는 것도 그 이유였다. 그러나 강신재, 박경리 등 신진 여성작가들은 해방기 남녀평등의 이상이 좌절되고 성차별주의가 사회의 정상 질서인 양 작동했던 전후 냉전체제 하에서 여성이 처한 억압적 현실을 문제 삼으면서 가부장제 사회에 균열을 내는 방식으로 여성 글쓰기의 정체성을 형성해 갔다. 이 글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 여성문학사에 대한 다시 읽기의 일환으로서 여성 작가의 ‘저자성’ 획득과 여성문학의 정전(canon)화를 염두에 두고 강신재의 초기 단편 소설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강신재는 그간 여성적 섬세함과 부르주아적 세련됨으로 여성의 운명을 그리는 여성 작가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작가 자신은 여성의 운명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며 “인간의 생태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듯 결정적인 어떤 순간을 포착”하는 데 흥미를 느낀다고 밝힌 바 있다. 강신재는 진화심리학자처럼 경쟁과 유혹의 전략을 통해 사회의 도덕 규범을 어지럽히는 색정증적 여성들을 즐겨 그렸다. 그러나 같은 성 내 경쟁(intra-sexual competition)과 다른 성에 대한 유혹과 질투 같은 성 전략(sexual selection) 이 성공적인 짝짓기, 즉 종족 번식을 위한 투쟁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강신재 소설은 진화론과 결정적으로 구별된다. 번식상의 목표와 무관한 성적 쾌락에 대한 추구는 ‘나쁜 여자’가 여성성 규범을 수행하는 것을 거부하고 가부장제 바깥에 서기 위한 여성의 해방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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