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본고는 신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성 역할 전환의 소재 전통 속에서 검토한 것이다. 텍스트가 한 시대와의 컨텍스트를 이루기도 하지만 초시대적 상호텍스트성을 갖는다는 것이 문학 소재사 내지 주제론의 방법론적 근거가 된다. 이렇게 볼 때 나혜석과 김동인이 그들 시대의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신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각각 「현숙」과 「김연실전」으로 대응한 것은 현실상관성도 갖지만 서사를 주도하는 여성들이 파격적이고 공격적인 에로스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성 해방의 소재사에 접맥되어 있다고 하겠다. 에로스의 역전극은 실상 여성 억압의 역사만큼이나 길고도 오랜 양성공존의 문화적 본능에 다름 아니다. 이를 개화기의 여성작가와 남성작가가 재독해한 「현숙」과 「김연실전」은 그러므로 성 역할 전환의 개화기식 변이라고 할 것이다. 이 텍스트들은 가정을 박차고 카페나 학교 같은 공적 영역으로 나온 가출여성 주인공이 서사를 주도하며 속물적 신남성을 길들이는 점에서 공통성을 갖지만 차이점도 있다. 예컨대 「현숙」에서 주인공 현숙의 섹슈얼리티는 자의식에 바탕을 둔 계산된 것이라면, 「김연실전」의 경우 욕망과 일탈을 혼동한 신여성의 허위의식이란 것이다. 곧 「현숙」에서 타산적이고 영악스러운 카페여급 현숙이 금전등록기로 자처하며 그녀 주위의 신남성들과 계약결혼을 제의하는 위악적인 여성인데 비해 「김연실전」의 동경유학생 김연실은 통속소설을 탐독하다 문학=연애라는 생각에 이르고, 연애는 여성해방인 즉 연애를 경험해야 선각자가 된다고 믿으며 남성편력에 나서는 위선적 여성이다. 이 같은 낙차는 전자가 여성에게 호의적인 여성 텍스트이고, 후자는 여성에게 적대적인 남성 텍스트인 것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