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전혜린은 반복적인 일상이나 몰개성적인 삶을 견디지 못하는 민감한 감수성을 지닌 예외적 개인으로 이해되어왔다. ‘실존’과 ‘자기’를 추구하는 그의 목소리는 관념성을 부각하는 것이자 타인과 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실과 불화하는 그의 의식세계는 ‘참된 자기’로 살아가기 어렵게 하는 억압적 현실과의 긴장과 경합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전혜린이 추구했다고 여겨지는 관념적 가치들이 어떠한 맥락에서 생산되었고, 현실 문제와 어떠한 관련성을 띠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혜린의 ‘자기’를 추구하려는 실천적 행위는, 그 과정에서 장애가 되는 당대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관념 속에 굳어진 젠더 규범을 거부하면서 구체화되었다.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여성성을 내면화해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전혜린은 한 개인이 여성성과 남성성에 속하는 면면들을 넘나들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이분법적 젠더체계의 견고함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때, 본질화된 젠더를 횡단하는 힘은 ‘자기’가 인식되는 찰나의 순간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자기 상실을 유도하는 고착화된 성역할 논리 속에서, 전혜린은 여성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이 부조리함을 응시하는 것만이 인습과 타인의 시선을 따르지 않는 ‘자기’의 삶을 살게 하는 계기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방법은 샤르트르, 보부아르 등의 실존주의 철학과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등 그가 읽었던 책에서 나타나는 사유들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인다. 또한 독서를 통해 만난 단일한 정체성으로 규정되지 않는 복수의 여성‘들’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번역을 비롯한 산문에 담아냄으로써 공론장의 젠더 규범과 화합하지 않는 사유를 보여주었다. 이는 전혜린이 자신의 현실과 투쟁하고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글쓰기 실천의 동력과 방법을 그가 읽은 책과의 영향 속에서 키워나갔음을 알게 한다. 이처럼 전혜린은 읽고 쓰는 행위를 통해 젠더 규범을 동요하게 하는 문화적 실천을 수행했다. 규범화된 여성성과 남성성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기’를 만들어가는 개인을 강조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당대 이분화된 젠더구조를 무너뜨리는 수행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볼 때, 전혜린 문학에서 발견되는 평범함과 속물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구체적 현실을 도외시하거나 현실 밖으로 탈주하고자 했다고 단언하는 것은 일면적인 해석이라 하겠다.
세대
여상
여원
자유문학
Fides
오영수, 「갯마을」, 갯마을 , 중앙문화사, 1956, 91∼121쪽.
전혜린, 「생의 한가운데」, 독일전후문제작품집 , 신구문화사, 1961, 144∼332쪽.
전혜린, 「문제성을 찾아서: 참신한 형식의 문학」, 독일전후문제작품집 , 신구문화사, 1961, 387쪽.
전혜린, 「현대의 이브」, 전후문학의 새물결 , 신구문화사, 1962, 81∼88쪽.
전혜린, 미래완료의 시간 속에 , 전혜린 기념출판위원회 편, 광명출판사, 1966, 19∼23, 44, 68, 74, 120, 139∼140, 161, 166, 234∼238, 290∼299, 324∼325쪽.
전혜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전집 1), 청산문고, 1968, 24∼29, 149∼154, 171∼174, 175∼182, 197∼210쪽.
전혜린,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전집 2), 청산문고, 1968, 17∼18, 66∼68쪽.
전혜린, 그래도 인간은 산다 (전집 3), 청산문고, 1968, 173∼234쪽.
김용언, 문학소녀(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 , 반비, 2017, 7∼236쪽.
변광배, 제2의 성: 여성학 백과사전 , 살림, 2007, 107∼119쪽.
이덕희, 전혜린(사랑과 죽음의 교향시) , 나비꿈, 2012, 42∼46, 80, 106쪽
시몬 드 보부아르, 조흥식 역, 제2의 성 (상), 을유문화사, 1993, 9∼31쪽.
주디스 버틀러, 조현준 역, 젠더트러블 , 문학동네, 2008, 114∼149쪽.
R. W. 코넬, 안상욱․현민 역, 남성성/들 , 이매진, 2013, 112∼135쪽.
김기란, 「1960년대 전혜린의 수필에 나타난 독일 체험 연구」, 대중서사연구 제23호, 대중서사학회, 2010, 67∼97쪽.
김미정, 「여성교양소설의 불/가능성-‘한국-루이제 린저’의 경우(1)」, 문학과 사회 제116호, 문학과지성사, 2016, 64∼87쪽.
김양선, 「1950년대 세계여행기와 소설에 나타난 로컬의 심상지리 : 전후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2호, 한국근대문학회, 2010, 205∼230쪽.
김륜옥, 「잉에보르크 바흐만과 전혜린-1950년대 전후 독일 및 한국 여성지식인의 삶과 문학」, 헤세연구 제20집, 한국헤세학회, 2008, 301∼329쪽.
김복순, 「전후 여성교양의 재배치와 젠더정치」, 여원 연구: 여성․교양․매체 , 한국여성문학학회 여원 연구모임 편, 국학자료원, 2008, 23∼55쪽.
김윤식, 「침묵하기 위해 말해진 언어」, 한국근대작가론고 , 일지사, 1974, 397∼405쪽.
김현주, 「1950년대 여성잡지와 ‘제도로서의 주부’의 탄생」, 여원 연구: 여성․교양․매체 , 한국여성문학학회 여원 연구모임 편, 국학자료원, 2008, 56∼82쪽.
김화영, 「‘화전민’의 달변과 침묵」, 바람을 담는 집 , 문학동네, 1996, 123∼130쪽.
박숙자, 「여성은 번역할 수 있는가- 1960년대 전혜린의 죽음을 둘러싼 대중적 애도를 중심으로 -」, 서강인문논총 제38집,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3, 5∼42쪽.
서은주, 「경계 밖의 문학인- ‘전혜린’이라는 텍스트」, 여성문학연구 제11호, 한국여성문학학회, 2004, 33∼56쪽.
이동하, 「전혜린에 대해서 몇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들」, 한국문학과 인간해방의 정신 , 푸른사상, 2003, 300∼312쪽.
이임하, 「한국전쟁과 여성노동의 확대」, 한국사학보 제14호, 고려사학회, 2003, 251∼278쪽.
이행미, 「전혜린 문학에 나타난 ‘고향’과 ‘회상’의 글쓰기」, 한국현대문학연구 제54집, 한국현대문학회, 2018, 413∼453쪽.
이행선․양아람, 「루이제 린저의 수용과 한국사회의 ‘생의 한가운데’-신여성, 인생론, 세계여성의해(1975), 북한바로알기운동(1988)」, 민족문화연구 73권,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6, 267∼303쪽.
임미진, 「1945∼1953년 한국 소설의 젠더적 현실 인식 연구」, 서울대학교박사학위논문, 2017, 1∼177쪽.
장순란, 「한국 최초의 여성 독문학자 전혜린의 삶과 글쓰기에 대한 조명」, 독일어문학 제21호, 한국독일어문학회, 2003, 149∼174쪽.
전지니, 「8.15 해방과 ‘노라’ 이야기- 최의순의 「노랭이집」, 정비석의 「안해의 항의문」을 중심으로」,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55집,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 2012, 175∼201쪽.
조혜란, 「 제2의 성 Le deuxieme sexe 의 초기 한국어 번역과 수용: 이용호의 1955년, 1964년 번역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1∼155쪽.
진성희, 「장아이링과 전혜린의 글쓰기와 '일상'」, 중국어문논역총간 제22집, 중국어문논역학회, 2008, 323∼345쪽.
천정환, 「처세․교양․실존: 1960년대의 ‘자기계발’과 문학문화」, 민족문학사연구 40권, 민족문학사학회, 2009, 91∼1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