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박경리는 주제나 개성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인물을 창조했는데, 인간의 본성과 외양묘사를 유형적으로 그리는 인물형상화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신체적 정신적 결손을 지닌 인물의 경우 이런 유형성에서 벗어난 섬세한 인물화를 통해, 인간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과 비극적 인식을 드러낸다. 이 논문은 박경리의 「해동여관의 미나」, 『나비와 엉겅퀴』, 「쌍두아」, 『토지』를 중심으로 결손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형상화 특징을 살피고 이의 상호 텍스트적 문제도 아울러 고찰하였다. 「해동여관의 미나」에서는 전쟁고아 및 양공주 2세의 신체를 바라보는 연민과 멸시의 이중시선이 나타난다. 이 불편한 시선은 『나비와 엉겅퀴』에서 전쟁으로 인한 신체장애자와 전쟁고아의 소외와 상처에 대한 은유로 발전된다. 이들에 대한 시선과 실존적 감정을 통해, 전후 사회에서 ‘양심’이라고 부르는 도덕적 기준이 붕괴되었음을 역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전후의 내면적 불구성은 「쌍두아」에서 가시적인 신체 기형을 가진 인물과 더블로 형상화된다. 주인공이 자신의 더블인 그림자 인물을 대면하면서 느끼는 비이성적 혐오와 공포는 이 작품이 인간의 원죄의식, 억압된 것의 귀환을 암시하는 비극적 서사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다시 『토지』에서 곱추인 조병수에게 느끼는 최서희의 감정, 양소림의 기형적인 손을 보고 느끼는 최환국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이들이 느끼는 충격적인 혐오감과 견딜 수 없는 공포는 자아의 영속을 위협하는 억압되고 배제된 요소들이 가시화된 것을 보는 데에서 오는 ‘섬뜩함(Das Unheimlich)’으로 해석된다. 이는 정상성의 범위 안에서 살아남은 자가 가져야 할 죄의식으로서 ‘생명의 아픔’이며 작가가 견지해 온 비극적 인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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