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본고는 감상성이 해방 이후 한국전쟁, 80년대 민주화운동과 같은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구조변동을 가져왔던 사건에 대응하는 여성 특유의 젠더화된 감정구조라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먼저 한국전쟁에 대한 젠더화된 인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강신재의 단편을 꼽았다. 「향연의 기록」, 「동화」는 감각적 문체, 여성의 욕망과 사랑이라는 사적 감정을 부각함으로써 전쟁의 폭력성과 광기를 간접적으로 비판하였다. 1950년대 한국전쟁을 다룬 소설에서 예견된 감각적인 글쓰기 스타일, 낭만성, 일탈과 전복성은 1960년대 강신재 특유의 감상적 대중소설의 경향으로 이어진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이성, 광장의 정치, 공공성의 측면이 아닌 감정, 밀실, 우울증의 맥락에서 다룬, 즉 민주화운동에 대한 젠더화된 접근의 예로 강석경의 『숲속의 방』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첫째, 여대생 소양의 내면을 드러내는 글쓰기 양식인 ‘일기’의 빈번한 차용, 둘째, 소양의 나르시시즘적 취향과 우울증을 통해 민주화운동 세대이지만 주변부에 위치한 주체의 곤경을 포착하였다. 80년대를 지배했던 광장의 정치, 자유주의, 부르주아 가족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혐오와 비판의식은 자기만의 취향으로 구축된 방 만들기, 시대의 우울에 우울증으로 저항하기로 표출된다. 공지영의 90년대 후일담 소설은 386세대의 변혁에의 열망과 헌신성, 도덕적 결벽성에 대한 과잉 감정의 수사학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우리’로 지칭되는 감정의 공동체와 ‘그때’로 지칭되는 80년대에 대의를 위해 욕망과 낭만, 사랑마저도 헌납하며 살았던 도덕적 주체들을 반복적으로 호명한다. 감정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말줌임표의 빈번한 사용, 편지 형식의 차용, 인물들 간의 대화나 독백에서 ‘우리’라는 감정의 공동체를 끊임없이 언급하는 것 등은 386세대의 진정성과 윤리에 대한 감상적, 여성적 글쓰기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해방 이후 여성작가들은 현대사의 변화에 이성보다는 감정, 객관현실보다는 주관성과 내면, 공적 영역보다는 사적 영역이나 체험을 기초로 한 글쓰기로 대응했다. 이들은 감각성, 우울증, 애도, 불안, 나르시시즘, 슬픔과 비애, 자폐와 결벽성 등 감상주의로 명명할 수 있는 감정의 세계를 다양하게 펼쳐 보였다. 그런 점에서 감상성, 감상적인 것은 열등한 것으로 저평가될 것이 아니라 시대와 현실에 대한 젠더화된 반응으로, 여성문학의 계보를 잇는 문학사 서술의 방법론으로 재론될 필요가 있다.
강신재, 『희화(戱畵)』, 계몽사, 1958
강신재, 「동화」, 『여정(旅情)』, 정우사,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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