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1229-4632
이 글은 분노 감정이 김명순의 시세계를 해명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의 하나라고 보고 그녀의 시-「싸움」, 「유리관 속에서」, 「내 가슴에」, 「저주」, 「유언」, 「외로움의 변조(變調)」, 「무제」2편 등-를 분석하였다. 그녀의 시에서 분노 감정은 1924년에서 1925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표출되었다. 이 시기는 그녀가 남성 문인들과 매체로부터 부당한 여성 혐오와 비난을 집중적으로 받았던 시기이다. 따라서 분노 감정은 그녀에게 위해를 가하는 공격자들에게 그것을 중단하라는 경고이며, 그들의 부당함을 바로잡기 위해 표출된 저항 감정이다. 과거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분노 감정은 표출하지 말아야 할 부정적 감정이었다. 하지만 페미니즘에서 분노는 억압하고 억제해야 할 부정적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해 적극적으로 표출해야 할 감정이다. 분노 감정이야말로 가부장제의 모순된 체제를 변화시키는 창조적 에너지이자 여성문학의 중요한 미학 원리이다. 본고는 김명순의 시에 표출된 분노 감정이 젠더 불평등과 가부장제의 부당한 억압에 저항하는 정당한 감정이며, 자아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긍정 감정이라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시를 해석하였다. 그런데 본고는 분노와 더불어 슬픔, 우울 등에 대해서도 함께 다루었다. 왜냐하면 감정은 역동적이어서 슬픔은 언제든지 분노로 바뀔 수 있으며, 슬픔이 분노로 바뀌면 슬픔은 사라진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상황에서도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면 분노가 되고, 자신에게 돌리면 슬픔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자아 내부를 공격하면 우울이 되는 등 분노, 슬픔, 우울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마리 J. 마츠다는 소수자의 다수자를 향한 혐오 발언은 ‘분노에 찬 시’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녀에 따르면 종속된 집단의 지배 집단을 향한 증오감의 표현, 혐오, 그리고 분노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 발언과는 달리, 지배 집단을 향한 구조적 지배를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리 J. 마츠다의 말처럼 김명순의 시에 나타난 분노 감정과 혐오 발언은 다수자인 남성을 향한 ‘분노에 찬 시’이다. 여성들을 향한 남성들의 혐오 발언은 젠더 위계 서열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을 열등하고 종속적인 위치로 전락시킨다. 하지만 김명순은 자신의 시에서 여성 혐오에 침묵하지 않고 분노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혐오 발화자인 남성의 권위를 교란시켰다. 김명순의 시가 보여준 분노 감정은 개인적인 데서 촉발된 것이지만 개인적인 것을 넘어선다. 여성을 혐오하는 가부장제의 권력에 도전하고 그들의 권위를 교란시키는 여성 주체를 반복해서 보여주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김명순은 대단한 페미니스트이다. 그녀는 ‘사나운 조선’에서 좌절하지 않고 분노의 감정을 시를 통해 적극적으로 표출한 강인한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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