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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수(중앙대학교) pp.2-6 https://doi.org/10.15686/fkl.2021..52.2
허윤(부경대학교) pp.10-35 https://doi.org/10.15686/fkl.2021..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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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로봇이나 인조인간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기대되었다. 노동은 시민의 의무임과 동시에 시민권을 획득하는 주요 통로였으며, 일할 수 있는 몸을 가진 노동자는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로, ‘일할 수 없는 몸’으로 명명된 장애인–퀴어–여성은 시민권을 획득할 수 없는 자로 나뉘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비장애중심주의를 개선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트랜스휴머니즘 논의에서 보듯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장애에 대한 판정은 실제로 일할 수 있는지 여부가 아니라 사회적인 것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김보영의 소설은 이러한 비장애중심주의를 전유하여 능력주의를 규범으로 삼은 사회를 재현한다. 그는 장애–비장애, 여성–남성, 퀴어–이성애자 등의 이분법적 질서를 해체하고, 한국 사회가 상정한 진보의 선형적 시간관을 비틀어낸다. 로봇은 인간을 만들어내고, AI는 이러한 역진화의 상상력은 ‘일할 수 없는 몸’으로 배제된 존재들을 규정하는 통치성을 패러디한다. 근대성을 넘어선 곳에 포스트휴먼의 상상력이 있다면, 김보영이 재현하는 포스트휴먼은 인간성을 탈신화화하는 움직임이 되는 것이다.

류진희(건국대학교) pp.36-61 https://doi.org/10.15686/fkl.2021..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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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지난 30여 년간 신자유주의 전개와 금융위기의 극복에서 초국적 한류 산업이 ‘굴뚝없는 공장’으로 성황이었다. 88만원 세대, 3,5,7포 세대, 흙수저, 헬조선의 시대에 자본 없는 청춘들이 그나마 몇 남지 않은 자수성가 가능한 직업으로 연예인을 선택하고자 했다. 그리고 2021년, 방탄소년단은 BTS가 되어 빌보드, 그래미를 석권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동시에 세계에서 각광받는 아이돌이 되었다. 그들의 글로벌 팬덤인 아미가 그렇듯, 여기에는 남성 스타와 여성 팬이라는 상징적 분할이 여전하다. 그러나 한 동안 정체기에 있었던 K–pop을 드라마 중심으로 진전되던 한류와 연결될 수 있게 한 것은 걸 그룹이었다. 2008년 무렵 소녀시대가 중국, 카라가 일본, 그리고 원더걸즈가 미국 등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이들 여성 연예인들에 대한 논의들은 한국 대중문화의 초국적 진전과 상관없이, 이들 여성 멤버들이 수행하는 서비스 노동의 성격에 대한 언급없이 이뤄졌다. 그렇기에 먼저 이 글은 역사적 결절마다 초국적 서비스 노동을 수행하는 걸 그룹의 계보를 다뤘다. 그 과정에서 최근 여성서사에 대한 촉구로 여성 연예인과 걸 그룹이 유력한행위자로 핵심적으로 다뤄진 두 소설에 주목한다. 바로 2019,20년에 나란히 단행본으로 출간된 조우리의 장편소설 『라스트 러브』와 한정현의 단편소설 「소녀연예인 이보나」이다. 이 이야기들은 서비스 노동을 수행하는 걸 그룹과 그 초국적 연원으로서 여성 연예인들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 글은 이 두 작품 모두 여성들이 수행해온 초국적, 혹은 서비스 노동을 말하면서도 섹슈얼리티적인 측면을소거하는 선택을 하고 있음도 더불어 지적했다.

김미정(서울예술대학교) pp.62-93 https://doi.org/10.15686/fkl.2021..5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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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글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 2010년대 후반 노동–자본의 조건이 서사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검토한다. 이를 위해 이 글은, 오늘날 노동–자본 관계가 텍스트 안에서 어떻게 의식·무의식적으로 교섭하고 있는지 살핀다. 이것은 반드시 오늘날 노동의 조건과 시대의 성격에 대한 검토를 요구한다. 이 글이 특히 주목한 것은, 오늘날 시스템에 인간이 부드럽게 공모되어 가면서 노동–자본의 관계가 단순한 적대로 환원될 수 없는 복잡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능동적, 주체적 인간관 역시 흔들리고 있다. 이것은 창작방법의 차원에서 일·노동 소설 주인공의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측면과도 관련된다. 소설의 캐릭터는 대체로 그가 속한 시스템 및 그가 하는 일에 의해 결정된다. 두 번째로 이 글은, 노동을 문제설정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다루는 일·노동 소설들은, 일을 둘러싼 ‘모멸’과 ‘존엄’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존엄’ 쪽으로 도약하기를 갈망한다. 이런 점에서는 과거의 일·노동 서사와 크게 다를 바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노동의 관점은 근대적 ‘인간=비오스(bios)=존엄=능동=주체=개체=자립= 심신건강’ 등의 가치에 기대고 있다. 이것은 자연스레 ‘동물=조에(zoe)=모멸= 수동=객체=의존=장애=질병=나이듦’을 구성적 외부로 갖는다. 그리고 노동의 규범성은 이런 구성적 외부를 지양하면서 추구되어왔다. 그렇기에 노동할 수있는 권리는 곧 시민권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 임금노동으로 환원될 수 없는 수많은 활동과 정동을 놓치기 쉽다. 또한 권리의 분배 문제를 틀지우는 자본주의 시스템 바깥에 대한 상상도 봉쇄되기 쉽다. 즉, 노동은 현실 속 시민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다른 관계와 세계에대한 상상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근대의 노동중심성을 질문하는 것은 이 글의 조심스러운 결론이자 다른 글의 시작이어야 할 것이다.

엄진주(서울대학교) pp.96-120 https://doi.org/10.15686/fkl.2021..5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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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만중의 『구운몽』에 형상화된 여성 우정의 양상과 의미를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구운몽』에는 다수의 여성 인물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이들 간의 관계에 주목한 연구는 비교적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양소유가 여러 뛰어난 여성을 아내로 맞이한다는 기존의 서사는, 여성들의 친밀한 관계에 초점을 맞출 경우 새롭게 해석될 가능성이 열린다. 『구운몽』의 여성 우정은 친구와의 일대일 우정을 위해 같은 남자와의 결혼을 선택하는 양상과, 결혼을 통해 그러한 우정을 일대다의 관계로 확장시켜 여성들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양상으로 나뉜다. 중세 시대에 여승이나 수녀 등의 여성 공동체가 가부장적인 사회의 대안 공간 혹은 대항공간으로 기능했음을 고려한다면, 『구운몽』 속 일부다처제는 남성 중심의 질서를 넘어서 여성들이 우정을 이어나가는 헤테로토피아로서의 의미까지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에 남성의 욕망이 깃들어 있음을 완전히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성들 사이의 우정을 중심으로 텍스트를 읽어나갈 경우 해방적인 의미가 충분히 발견될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clarifies the aspect and meaning of female friendship embodied in Kim Manjung’s Guunmong. Even though there are several female characters in Guunmong, relatively few studies have been conducted on relationship among them. If we focus on the intimate relationships of women, the traditional interpretation of Guunmong in which Yang So-yu marries several outstanding women, can be read anew. The female friendship depicted in Guunmong is divided into two aspects: choosing to marry the same man for a one-to-one friendship, and forming a female community by expanding such friendships to a one-tomany relationship through marriage. In the Middle Ages, the female community, such as nuns, functioned as an alternative space or counter space to a patriarchal society. Keeping this in mind, polygamy in Guunmong can also be interpreted as a heterotopia for women’s friendship, not just as a male-centered order. Of course, it is difficult to deny that male desires are embedded in Guunmong. However, if the text is read from a female friendship perspective, its emancipatory meaning can be discovered.

정인혁(가톨릭관동대학교) pp.121-145 https://doi.org/10.15686/fkl.2021..5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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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변강쇠가〉에 관한 연구 중 성 담론, 특히 여성의 성과 관련한 논의를 정리하면, 음욕에 대한 징계로 해석하거나, 반대로 가부장제에 의해 희생되는 여성성을 드러내어 사회적 억압을 폭로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 그리고 성적 유희의 한 양상으로 바라보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변강쇠가〉를 지배하고 있는 정조는 죽음과관련된다는 점에서 〈변강쇠가〉의 성 담론은 너와 나 사이의 담을 없애고 세상과소통하는 바흐친의 축제적 구조가 환기하는 성과는 사뭇 다르다. 도리어 매력적인 생명의 탄생 과정이면서 동시에 죽음을 환기하는 아브젝트로서의 성에 더 가깝다. 아브젝트 예술은 바로 그러한 아브젝트와 아브젝시옹을 통해 성, 특히 여성성에 대한 가부장제의 문제를 제기하는 예술이다. 조 스펜스의 〈정물〉은 닭고기, 야채, 과일 등과 더불어 가격이 매겨진 여성의 인공 유방을 함께 두어 여성을 식욕의 대상으로 비하하고 있다. 이는 〈변강쇠가〉의 ‘기물타령’과 동질성을 보인다. ‘기물타령’에서 역시 여성의 성기는 전경화되면서 각종 음식물로 비유되고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렇게 나열된 음식을 통해 환기되는 것이 죽음과 관련된제사상이라는 점은 〈변강쇠가〉의 ‘기물타령’, 나아가 〈변강쇠가〉를 아브젝트 예술로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본고의 목적은 〈변강쇠가〉의 ‘기물타령’과 옹녀의 사라짐이라는 문제를 아브젝트 예술의 관점에서 살피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파편화와재구성,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응시를 통해 ‘보여지는 주체’의 문제와 탈맥락화가있다.

박지영(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pp.146-176 https://doi.org/10.15686/fkl.2021..5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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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 연구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의 문학 장에서 창작된, 프로이트의‘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번역의 주요 양상이 보여주는 젠더 정치학에 대해서 분석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여기에는 당대 가부장적 부권의 쇠락과 모권의 부상에따른 공포가 만들어낸 ‘여성 혐오’라는 인식이 그 토대를 이룬다. 특히 이 시기 자기 욕망에 정직한, 정치적·경제적 활동 주체인 여성의 등장은 가부장제 사회를뒤흔드는 위력적인 현상이었다. 이러한 점은 오이디푸스 서사 구조를 택하고 있는 당대 텍스트에서 잘 드러난다. 전형적인 오이디푸스 서사를 차용하고 있는 정하연의 「환상살인」과 정현웅의 「오이디푸스의 초상」을 살펴보면, 당대 남성 중심의 가족로망스 서사에서는 아들인 주체가 당대 폭력적인 역사의 파행 속에 훼손된 부권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하거나 이를 거부하기 위해, 아버지 대신 어머니를 살해하거나 소거시켜 간다. 여기서 어머니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정치적경제적으로 능력있는 존재들이었다. 물론 이 두 텍스트의 주인공인 아들은 적어도 여타의 오이디푸스 서사처럼, 아버지와의 동성 연대의 세계로 나아가지는 않고 오롯이 단독자들로만 남는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미래는 유폐되거나 막막하다. 이는 이들의 서사가 남성성의 훼손을 보상받기 위한 폭력적인 자기 위안의서사이기 때문이며, 탈식민 이후 역사적 파고 속에서 훼손된 남성성은, 이러한 어머니(여성)을 소거시키는 것을 통해서도 제대로 된 아버지(초자아)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려 준다. 더불어 이는 보편 서사로써 프로이트의 남근 중심 동성 연대 가족로망스의 허구성(번역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시점에 이러한 남성 서사를 비판적인 거리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여성의 서사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오정희와 박완서의 소설은 이가족 로망스를 넘어서, 새로운 모녀의 연대가 가능한 세계가 존재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지은(서울대학교) pp.177-201 https://doi.org/10.15686/fkl.2021..52.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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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정래의 「황토」를 통해 가부장제 민족주의가 비–순혈적 존재를 배제하는 양상을 분석하고, 여성의 생애사 쓰기에 잠재된 힘을 확인한다. 비–순혈적 존재는 일제말기에는 ‘내선혼혈인’으로, 한국전쟁 후에는 ‘기지촌 혼혈인’ 등으로시대에 따라 달리 대표/표상(represent)되었다. 본고는 해방 후 ‘혼혈’ 개념이 인종화됨에 따라 한반도에서 살아 온 내선혼혈인의 존재가 삭제되었음을 지적하고, 이 또한 배제의 방식이라 보았다. 「황토」의 장남 태순이 ‘식별되지 않는’ ‘내선혼혈인’으로 자기 정체성을 알지 못한 채 순혈주의를 주장하고 있다면, ‘기지촌 혼혈인’인 동익은 ‘식별되는’ ‘인종적 표식’을 지니고 있음으로 인하여 폭력의 대상이 된다. 이때 태순의 태도는 이민족과 섞였던 자기 역사를 망각하고 끊임없이 타자를 배척하는 민족국가의 순혈주의 메커니즘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태순은 ‘순혈’ 민족이라는 범주가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영역’이 아니라‘비식별 영역’일 뿐임을 보여주는 존재이다. 이때 민족국가가 망각한 ‘불순한’ 역사는 어머니 점례의 생애사 쓰기로서 폭로될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 점례의 글쓰기는 완성되지 못했고, 여성 생애사 쓰기의 가능성은 도래할 것으로 남아 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how the patriarchy nationalism excludes beings with non-pure blood in 「Red Clay」 written by Jo Jeongrae, and to verify the subversive potential of writing conducted by women who remember the impure history of the national- state. In 「Red Clay」, Taesu, the eldest son who is ‘non-visible’ mixed blood, argue for pure-blood, without konwing his identity, while Dongik, the lastborn son who is ‘visible’ mixed blood, is excluded from the Korean society, due to his visually prominent. They differently experience alienation, depending on physically ‘hidden/revealed’ marks. In particular, Taesu whose own history is removed abuses his younger brother. Such an attitude is problematic, in that it is similar to the mechanism reproducing the pure-blood ideology of nation state which has endlessly excluded others, obliterating their own impure history in which they were mixed with foreign nations. Jeomrye’s writing her life history in the end of 「Red Clay」 can have a subversive potential, in that it discloses the impure lineage of the patriarchy national state.

정예인(성균관대학교) pp.202-229 https://doi.org/10.15686/fkl.2021..5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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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오래된 정원」(2007)과 「택시운전사」(2017)를 중심으로, 2000년대 이후 5·18 영화를 포함한 역사영화가 향하는 대문자 남성 중심의 역사(관)를 비판한다. 2000년대 이후 5·18 영화는 국가폭력 사건에 놓인 개인의 망딸리떼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비선형적 역사(관)를 반영하고자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5·18은 과거의 사건으로 봉합되고 ‘사건’의 당사자들은 타자화되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여기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5·18 영화의 내러티브상 장치와 연결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2000년대 이후 5·18 영화들은 5·18이라는 사건의 특징을 반영하여 ‘아는 자’와 ‘모르는 자’라는 짝패 형상을 부각하고, 그 짝패를 2007년에는 이성애에 기반한 멜로드라마적 관계로, 2017년에는 남성 간 연대 혹은 아버지–딸로 구조화했다. 이때 국가폭력의 사건은 한국형 멜로드라마를 경유하여 이른바비정치적이라 상상되는 사적 관계를 중심으로 재편되는데, 그 자리에서 여성은타자화되어 과잉 재현되거나 소거되는 방식으로 대문자 남성 중심의 역사(관)를보좌하게 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여성인물의 재현에 주목함으로써 타자로 여겨진 이들의 목소리로부터 ‘사건’의 기억을 ‘나누어 갖는(分有)’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Abstract

The May 18 films have changed their narratives affecting by changes in the political landscape of Korean society. This article criticizes the capitalized male-centered history of historical films, including the May 18 films, focusing on “The Old Garden”(2007) and “A Taxi Driver”(2017). Since the 2000s, the representation of national violence cases has been processed with a newly emerged way of writing history reflecting changes in the socio- cultural landscape and public perception. In particular, the May 18 films have intended to reflect the point of view that describes its national violence as nonlinear history by emphasizing a mentalité of individual who was placed on the national violence. During the process, May 18th was sealed as the past, and the parties of the incident were otherized. This article points out how the process links to the narrative of the May 18 films. Since the 2000s, the May 18 films have constructed the two parties of “Knower” and “Doesn’t knower” and highlighted it by setting up a melodramatic heterosexual relationship in 2007 and by building up a men solidarity or Father-daughter relationship in 2017, respectively. Through these Korean Melodramatic setups, the national violence was reorganized based on the intimate relationships presumed as non-political, whilst female characters assisted in the capitalized male-centered history as over-represented figures or eliminated ones. Therefore, by paying attention to the representing methods of female characters, this article identifies the possibility of ‘sharing and owning a violent incident’

권명아(동아대학교) pp.230-262 https://doi.org/10.15686/fkl.2021..5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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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연구는 『김지은입니다』를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부정주의가 어떻게 집단적으로 조직되는가를 공개적으로 증언한 정치적 텍스트로 해석하고 자리매김하고자한다. 이를 통해 이른바 ‘진보정치 집단’ 출신의 광역 단체장 성폭력 사건에 대한논의를 비판하고 이 사태를 역사적이고 이론적으로 다루기 위한 문제틀을 제시하고자 한다. 세부 연구 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김지은입니다』를 통해 민주화 세대의 지배적 정동과 정동 정치가 성폭력을 산출하는 조직 구조를 어떻게 구성하고 재생산하는지를 밝힌다. 둘째, 진보 집단 출신 정치인 중심의 조직 구도에서 노동 구조는 신분제에 가까운 노예화에 기반하고 있음에 주목고자 한다. 이런 조직 구조는 이중 노동 시장 이론과 일치한다. 셋째, 광역 단체장 성폭력 사건은 ‘진보 정치’ 집단의 ‘노동’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와 관련이 있다. 넷째, 진보 집단의 정파주의와 민주화 세대의 정동을극단적인 진영 대립의 원인으로 살펴본다. 성폭력 부정주의 연구는 우리를 대안 정치 이념이자 주체로서 반차별 정치의 이념과 주체가 형성되는 생생한 대안 정치로 이끈다. 오래된 정동 정치를 무력화하는 대안 정동의 현장이 바로 성폭력 부정주의 연구의 현장이다.

강도희(서울대학교) pp.264-283 https://doi.org/10.15686/fkl.2021..52.264
강은교(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pp.286-293 https://doi.org/10.15686/fkl.2021..52.286

여성문학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