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재일조선여성 1세들이 문해교육 과정에서 쓴 글 및 문해교육 경험을소재로 하여 쓴 글을 통해, 재일조선여성들이 식민주의와 가부장제 안에서 몸에 새길 수밖에 없었던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녀들을 마이너 필링스에 빠지게 만드는 관계를 벗어나 다른 ‘공통성들(commons)’이만들어 낼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를 모색하고자 한다. 분석대상은 재일조선여성들의 수기, 일기, 작문 등을 모아 놓은 방대한 자료집인 『在日朝鮮女性作品集: 一九四五~八四. 1~2』 중 재일조선여성 1세가 문해교육을 받고 글을 쓰는 과정이 나타난 수기, 일기, 에세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글들을‘자기서사공통장텍스트’라고 개념화한다. 재일조선여성들이 글과 글쓰기를 배우는 과정이 그녀들을 둘러싼 중층적 관계를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또한 ‘마이너 필링스’는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이고 미묘한 인종주의적 폭력인 ‘마이크로 어그레션(Microaggression)’에 의해 심화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재일조선여성들이 어떻게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가를 살펴본다. 첫째로 재일조선여성들이 문해능력을 획득하고 글쓰기를 욕망하게 되는 과정을, 문해교육 경험을 담은 글이 ‘생애사적 글쓰기’의 특징을 지녔다는 점과 관련시킨다. 이 생애사적 글쓰기의 특질을 통해, 어떻게 여성들이 ‘마이너 필링스(자기비하, 자기혐오, 수치심, 수동성)에서 벗어나 글쓰기를 욕망하는 주체로 변화하는지를 살펴본다. 둘째로, 문해교육과 글쓰기 과정에서 나타나는 양가적 욕망—1)기존 가부장제적 관계 속에서 인정받으려는 욕망, 2)여성들 사이의 새로운 자율적 공통장을 만들려는 욕망—사이의 다이나믹한 갈등을 포착한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라는 호칭이 어떻게 재일조선여성들의 다층적인 위치와 관계를나타내는 말로 새롭게 맥락화되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처럼 본 논문은 재일조선여성의 ‘자기서사공통장텍스트’를 기반으로, ‘마이너 필링스’와 ‘마이크로 어그레션’에 취약한 두 가지 위치인 ‘유색인종’과 ‘유민여성’을 연결시켜 보기 위한 시론적 작업이다. 이를 통해 ‘한국/한국인/한국여성’이라는 위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마이너 필링스’을 통해 지속되는 복합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성들의 공통장을 모색하려고 한다.
본고는 캐시 박 홍의 개념 ‘소수적 감정 (minor feelings)’을 바탕으로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 활발한 담론을 끌어낸 한국계 미국인 서사를 분석한다. 먼저 ‘소수적 감정’을 멈추어 있거나 결정화된 감정이 아니라 여러 경계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움직임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맥락화되는 동적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함을 주장하며, 한국계 미국인의 서사의 소수적 감정이 미국과 한국 사회라는 경계의 안과 밖에서 어떻게 번역되어 소비되며 새롭게 위치 지어지는지, 그 과정을 검토한다. 2021년 리 아이삭 정 감독의 영화 「미나리」를 통해 소수적 감정이 어떻게 젠더화되어 나타나며, 그중 어떤 소수적 감정이 서사화되는지 분석하고, 이와 함께 한국과 미국에서 이 영화가 소비되는 과정에서 소수적 감정이 재배치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더불어 민진 리의 2017년 소설 『파친코』에서 한국계 미국인과 재일조선인의 소수적 감정이 연결되고 단절되는 지점을 분석한다. 이처럼 ‘소수적 감정’이 국가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서로 다른 맥락에서 재배치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본고는 한국의 문화적 자장 안에서 캐시 박 홍이 제시한 ‘소수적 감정’이라는 개념을 비판적이고도 생산적인 방식으로 논의할 가능성을 모색한다.
This article analyzes the concept of "minor feelings" coined by Cathy Park Hong in her 2020 book Minor Feelings: An Asian American Reckoning, which generated passionate discussions in the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 On this basis, the article examines the minor feelings embodied in recent cultural narratives produced by Korean American authors. It argues that these "minor feelings" are not static or monolithic emotions but dynamic ones that are being constantly recontextualized as they cross cultural and national borders according to respectable society's different racial hierarchies. The essay first analyzes Lee Issac Chung's 2021 film Minari, exploring how minor feelings are gendered and which minor feelings are narrativized. The paper also analyzes how they are re-situated during the process of the transnational distribution of the film. In addition, the article also examines Min Jin Lee's 2017 novel Pachinko and questions how the minor feelings of Korean Americans and Zainichi Koreans are connected and disconnected in the narrative. By critically attending to the recent accolades of Korean American cultural products, this article aims to generate a productive discussion over the idea of "minor feelings" within and beyond the cultural boundaries of the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
이 글은 공적인 기록에 남겨지는 일이 드물었던 재일조선인 1세 여성들(1세 여성)을 문자자료를 단서로 하여 그것을 이해하는 방법을 탐구하려는 시도이다. 다루는 기간은 1945년 8월 15일 식민지해방 후부터 약 35년간, 즉 세대교체가 일어나기 전까지의 시기이다. 대부분 1세 여성들은 조선에서도 일본에서도 교육을 받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글로 써서 남길 수 없는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여태껏 묵살되어 온 조선어에 의한 라이팅이나,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 영향 아래 있던 재일 여성들이 쓴 라이팅에 주목해보면 해방 후 1세 여성들이 쓴 작품은 상당한 수에 이른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여성들이 쓴시, 수필, 수기, 에고 다큐먼트, 신문 투서, 학교 작문 등 폭넓은 라이팅을 검토 대상으로 함으로써 1세 여성들을 가시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한다. 우선, 1세 여성들의 연구사를 정리해 보았다. 그 후, 필자가 2014년 일본에서 펴낸 『재일조선여성작품집1945-1984』 출판의 경위와 그 편집의 과정에서 깨닫게 된 연구과제에 대해서 논한다. 마지막으로 1세 여성들이 실제로 조선어와 일본어로 쓴 작품들을 해독한다.
이 논문은 치병굿 가운데 〈광인굿〉을 중심으로 이 굿에 참여하는 주체인 무당, 환자, (귀)신들 사이의 상호의존적이며 역동적 관계를 드러내고자 한다. 〈광인굿〉과 같은 치병굿에서 치병의 메커니즘은 형식적 절차나 기능을 통해 남김없이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광인굿〉에서 돌봄과 치유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를 각 주체들의 관계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본고는 〈광인굿〉 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데 일차적 목적이 있으며, 그것을 통해 돌봄을 중심으로 하는 시각의 전환이 굿 연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수적으로 타진하고자 한다. 〈광인굿〉에서는 무당과 환자, 무당과 귀신, 귀신과 환자 사이에 존재론적 전환이 가능한데, 이러한 전환은 무당의 서사, 병자의 서사, 잡신의 서사를 전제하며 그 통사적 연쇄를 과거나 미래로 확장하면서 일종의 돌봄의 상상력을 작동시킨다. 이는 단순히 환자에 대한 동정이나 약자에 대한 배려와는 다른데, 자아와 타자의 잠재적 동일성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인인 귀신이 미움과 축출의 대상이 아니라 위무와 배려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이 굿의 특수한 지점으로본다. 〈광인굿〉 제 주체들의 상동적 관계는 이들이 모두 병에 걸릴 수 있는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는 점, 즉 인간의 취약함에서 비롯된다. 본 논의는 굿 안에서 이루어지는 제 주체들의 관계를 존재론적 전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호적인 것으로 살펴보았다. 이는 굿의 물리적 절차나 무당 중심의 기능을 성찰할 때에는 파악하기 어려운, 각 주체 간의 역동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의존성을 드러내준다.〈광인굿〉은 인간이 모두 취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돌보는 자와 돌봄을 받는 자로영원히 고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치료의 메커니즘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할 수있다.
본고에서는 『어면순』 속 성 소화들에 나타난 ‘엿보기’와 ‘엿듣기’를 살펴보았다. 엿보기/엿듣기가 정태적 ‘시선’이면서 동태적인 ‘행위’일 때, 이 행위에 담지된무의식적 욕망, 성에 대한 인식 등을 고민하였다. 엿보기와 엿듣기의 대상이 되는것은 대부분 남녀의 성교 혹은 여성의 성기이다. 엿보거나 엿듣는 행위 자체는 일상에서 금기로 취급되지만, 해당 소화들에서는 이 행위가 처벌받지 않고 주요 이야깃거리를 표면으로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엿보기와 엿듣기 행위의 주체, 즉 성교를 엿보고 엿듣는 전달자는 해학을 조성하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엿보거나 엿듣는 행위는 그 자체로 주체와 대상의 구분을 전제로 하면서, 주체와 대상의 ‘합의’가 있다면 일어나기 어려운 사건이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에 대한 서술은, 엿보거나 엿듣는 주체가 ‘엿보거나 엿들어도 되는’ 위치에 있음을 의미한다. 엿보기와 엿듣기 주체의 성욕을 긍정하면서 끝나는 서사의 흐름은 관음증의 메커니즘과 효과를 보여준다. 아울러 ‘성교를 거부하지 않고, 남성이 원하는 대로 보고 싶은 대로 신체를 보여주고 성교를 보여주는’ 여성의 모습을 통해 엿보기와 엿듣기의 대상인 여성의 육체, 욕망은 물신화되며 여성 육체는섹슈얼리티의 대상으로서 한층 파편화된다. 엿보기와 엿듣기를 통해 여성의 신체, 성욕이 실제와 다르게 ‘물신화’될 때, 이 물신화의 이면에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의 성욕과 쾌락이 존재한다. 물신화 과정에서 남성의 성적 욕망과 쾌락은 부인되고 가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여성의 성이 물신화되는 이면에는, ‘엿보거나 엿듣지 못하는 상황은 ‘결핍’이 된다는 점에서 엿보거나 엿듣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존재한다.
본 연구에서는 ‘독처의 제문’을 대상으로 여성 저자가 쓴 한글 장편 제문의 문학적 성격을 살펴보았다. 이 제문은 남편이 병을 앓다가 사망한 뒤 소기를 맞을 때까지의 일을 담고 있다. 화자는 40세를 앞둔 나이로 자식들을 일찍 여의어서 벼슬을 살던 남편이 여러 해 앓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상주를 세울 수 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화자는 외로운 남편의 혼백을 위로하기 위해 제문을 쓴다고 작성 이유를 밝혔으나, 위로의 대상인 사자(死者) 외에도 자신의 시름과 처지에 대한 진술을 들어줄 다른 청자를 의식하고 있다. 화자는 남편이 병을 앓을 때 무심해 보이던 자신의 태도에 대해 해명한다. 또 자신이 남편의 회복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속앓이를 했던 것을 몰라주고 의심하며 임종할 기회를 주지 않은 친지들을 원망한다. 그리고 남편의 3년 상을 치를 때까지만 살기로 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은 고독한 삶에 대한 울분을 쏟아낸다. 이처럼 독처의 제문은 남편과의 일상, 정서적 경험에 대한 기억보다 자신의억울함, 섭섭함, 고독함에 의한 서글픔을 많은 비중으로 서술하고 구체적인 수사로 표현해낸다. 제문은 여성의 글쓰기로 용인되고 자신의 삶과 깊숙이 연결된 친지의 죽음을 계기로 작성된 까닭에, 제문 저술의 표면적 목적을 압도하는, 저자의 자기표현이 가능했다. 따라서 독처와 같은 여성들의 제문 쓰기는 여성들이 자기입장에서 목소리를 내고 자기 삶을 표현하는 글쓰기로 전용될 수 있었다.
이 글은 산후병에 대한 의학적 인식과 현실을 통해 출산의 고통에 대한 사회문화적 인식을 읽어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전통 의서와 치험 기록, 일기에 형상화된 산후병을 대상으로 이 질병을 둘러싼 담론과 현실적 인식을 살펴보았다. 의서에서는 산후병에 대한 분명한 질병 인식과 함께 출산은 여성 신체의 일부가 아닌 전체를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관점이 드러나며, 특히 정신적 문제를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산후병의 의학적 치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던 사실을 『역시만필』을 통해 확인했으나, 남성에 의해 기록된 여성 질병 서사인 『노상추일기』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산후병으로 허무하게 죽어갔던 현실이 드러나며 동시에 그 고통의 문제가 어느 정도 공감받았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산후병에 대한 다층적 질병 인식을 통해 산후병의 고통이 오랫동안 공동체에 인정받아 왔음을 알 수 있었다.
This article attempts to establish the importance of community interest in women’s childbirth and pain as well as changes in human beings through the medical awareness of postpartum illness and the reality of disease. For this purpose, the actual appearance and coping methods of this disease were examined by looking at how postpartum illness was embodied in traditional medical books, actual treatment records, and a family diary. Because postpartum illness is an absolute disease with the condition of “postpartum,” examining the medical and social awareness of this disease is a starting point for examining how women’s childbirth issues were treated by the community. In particular, since postpartum illness is a disease that can cause mental fragility and physical problems, the amount of pain can be measured. Moreover, it can be understood that after childbirth, women were not faced with the problems that everyone faces; rather, they were faced with the problems of life and death. In medical books, the existence of postpartum illness was acknowledged, and the cause and treatment methods were described in detail. In this way, such medical books clarified that childbirth can cause various other diseases as well as postpartum illness itself. By examining knowledge contained in medical books and medical records of the late Joseon Dynasty, the circumstances under which actual treatment was administered was clarified. However, the fact that this case is difficult to see as universal was confirmed by the records of many women who died in vain after giving birth. The diary provides a perspective on the problems of postpartum illness from a realistic point of view, and at the same time, it provides an opportunity to understand the emotional changes and inner pain experienced by men as an observation vehicle rather than the subject of childbirth.
첫 글 「이상적 부인」(1914)에서 ‘노라’에 대한 동경을 보였던 나혜석은 1921년『인형의 가』에 삽화를 그리고 시 「인형의 가」를 발표했으며 단행본 『노라』 (1922)에 ‘노라’라는 제목으로 가사를 실었다. 첫 세대 신여성 나혜석은, 김우영과 이혼 후 ‘인형의 집’을 나선 노라의 삶을 몸소 살아냈다. 삶의 전반에서 몰락하고 고립되었으나 자신의 삶과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1933년 자전 소설로 알려진 『김명애』를 쓰고 소설 「현숙」(1936), 「어머니와 딸」(1937)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활동을 이어갔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주목되지 않았던 「현숙」 과 「어머니와 딸」은 「경희」(1918)와 연결시켜 분석할 때 새로운 의의를 발견할수 있다. 「현숙」과 「어머니와 딸」은 ‘인형의 집’ 입성을 거부하는 여성들을 통해 ‘조선의 노라’의 현실을 서사화하였다는 점에서 신여성 ‘경희’의 1930년대 후일담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들을 재독함으로써 1920~1930년대의 신여성 담론과 여성의 문제를 연속적인 시야에서 논의할 수 있다. 나혜석은 소설로 쓴 ‘노라이즘’을 통해 전근대의 억압과 근대의 모순이 결합된 조선식(式) 인형의 집을 존속시키는 결혼과 가족제도를 모두 비판하고 있으며 이는 특히 군국주의가 강화되며 가족주의와 양처현모 담론이 강조되었던 1930년대의 맥락을 고려할때 새롭게 평가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본고는 ‘신여성’이 아닌 ‘작가’로서의 나혜석에 대한 관심으로 나혜석 문학 연구의 방향을 선회하여 나혜석 문학을 총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Na Hye-seok, who displayed her admiration for Nora in her first work of writing Ideal Girl (1914), drew an illustration in “A Doll’s House” (1921), released a poem titled “A Doll’s House,” and included the lyrics to the song “Nora” in the book Nora (1922). Na Hye-seok, a first-generation “new woman,” was understood to be Nora of Joseon, who left the doll’s house after divorcing Kim Woo-young. Nevertheless, she never gave up on life and art. She published the novels Hyunsuk (1936) and Mother and Daughter (1937). These works can be newly evaluated in comparison with the representative work Kyunghee (1918). Both novels can be seen as behind-the-scenes stories of Kyung-hee. The author accuses the reality of being “Chosun’s Nora.” Na Hye-seok criticizes marriage and family systems that combine pre-modern oppression and modern contradictions through the Noraism contained in in these novels. By rereading these novels together, the discourse on new women in the 1920s and 1930s and the problem of women can be discussed from a continuous perspective. In addition, this study argues that research on Na Hye-seok’s writings should shift its focus to Na Hye-seok as a writer, not as a “new woman.” It is hoped that this will lay the foundation for studying the internal continuity of Na Hye-seok’s literature.
이 논문은 장덕조의 단편소설 「해바라기」와 「여류 예술가」를 중심으로 문학소녀의 탄생과 여류 작가의 상관성을 고찰했다. 문학소녀라는 새로운 표상은 여성 작가의 일상과 정서를 둘러싼 규율화의 결과다. 장덕조의 두 편의 소설은 ‘문학 하는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과 존재론적 불안의 감정을 히스테리로 효과적으로 재현한다. 특히 남성 중심적 권력의 규율화와 젠더화된 감정의 재배치 가능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문학 하는 여성’ 주체는 병리적 상태에서 탄생하며 여성의 저항과 목소리는 봉합된다. 여성의 문학적 향유와 예술적 성취를 제한하는 식민지 문단의 전략은 여성 작가가 성장할 수 없도록 환경을 조성해 나간 지배권력의 억압성을 드러낸다. 이 논문은 문학소녀의 호명 과정에 내재한 여류 작가의 존재 방식을 구체적으로 재평가하고 식민지 여성 작가들이 지배 담론에 의해 각성을 강요당한 억압적인 일상 속에서 취한 작가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This paper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birth of a literary girl and female writers through an analysis of Jang Deok-jo’s short novels Sunflower and Female Artists. The new representation of “literature girls” is the result of the discipline surrounding the daily lives and emotions of female writers. Jang Dukjo’s early short stories effectively reproduce the social identity and on to logical anxiety of “literary woman” as “hysteria.” In particular, these representations are important in that they reveal the possibility of discipline of male-dominated power and there location of gendered emotions. The subject of “literary woman” is born in a pathological state, and women’s resistance and voices are sutured. Colonial literature’s strategy of limiting women’s literary enjoyment and artistic achievement reveals the oppression of the ruling powers that created an environment in which female writers could not grow. This paper is meaningful in that it specifically re-evaluates women writers’ methods of survival, which are inherent in the process of calling summoning “literature girls.” Moreover, it reveals the authoritarian attitudes adopted by colonial women writers in their oppressive daily lives, where, subject to the pressures of dominant discourse, they were forced to awaken.
이 연구는 1960년대에 다수 창작된 여성 연애서사 속에 여성 성장서사의 특징이 발견되는 작품들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 시기 여성 성장서사의 특수성을 추출하는 한편, ‘남성–교양서사/여성–연애서사’가 분화되기 시작한 때로 인식되는 1960년대 문학장을 젠더적으로 재맥락화하고자 한다. 1960년대 여성 연애서사는 여성 주체의 내면을 서사에 전면화하는 기제를 통해 여성 주체의 자율성을 드러내면서 여성 성장서사의 성격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성 주체의 자율적 내면을 문화적 기제로 활용할 수 있었다는 것은 여성의 자율성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여성이 안전한 부속 공간을 할당받는 방식으로 젠더적 지배 질서의 차등적 위치를 수용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 연애서사가 주로 활용했던 대중서사의 문법이 여성 주체의 자율성이 가진 가상성에 맹목적이기만 했다고는 볼 수 없다. 이 시기 연애서사에 자주등장하는 죽음의 파국은 사실상 ‘사랑의 합일’을 찾아가는 주체의 노력을 무화시키는 징후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같은 시기 이 가상적 자율성 자체를 질문함으로써 여성 주체의 ‘성장’이 가진 의미를 재구성하고 있는 작품들이 관찰된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This study focuses on several literary works that of 1960s Korean literature that resemble the characteristics of bildungsroman for women. In an effort to account for the specificities of female bildungsroman during this era, this article attempts the gendered re-contextualization of the general perception that romantic stories were a genre mainly for female writers while bildungsroman, a serious literary form of modern art, finally became fully developed by primarily male writers in 1960s Korean literature. At that time, romantic stories displayed the characteristics of bildungsroman, which emphasized the autonomy of female subjects by revealing the interiorities of heroines. However, the fact that the autonomous interiority of a female subject can actively function as a cultural component does not directly represent the social progress of women. Rather, it reveals that female writers were allocated a safe and subordinate site by accepting the dominant order of gender in the process of nation-state building. Nevertheless, it would be unfair to claim that the popular patterns of romantic stories at that time were completely blind to the fantasy of female autonomy. The dramatic dissolution by death, which was common in romantic stories, can be read as a symptom annihilating the endeavors of female subjects who appeared to search for the unity of love.
이 글은 5.18 소설에서의 모성 재현 양상에 주목하여, 역사적 희생자 혹은 피해자로 모성을 바라보는 고정된 관념을 해체하고, 모성 신화 이면의 남성중심의 지배적인식 틀을 확인하면서 역사적 고통의 순간에 나타나는 모성의 다면성을 살피고자 했다. 5.18 소설에서 어머니들은 역사적 피해와 희생의 고통을 상징하는 존재들로그려진다. 그러나 이것이 5.18 모성의 전부는 아니다. 그녀들은 사회적으로 할당된 자신들의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이동하는 주체로 나서며 젠더 정체성을 해체하고 불안정성과 유동성을 노정한다. 직접 시위에 참여하면서 실천과 투쟁의 한복판에서 이전과 다른 개인 주체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발현되거나, 모성의 양심에 따른반성적 주체로서 공동체적 시야를 확보해야가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러한 순간에 특히 주목되는 것은 어머니의 몸이다. 5.18 소설에서 모성의 육체성은 순응적이면서도 동시에 실천적, 정치적 결단을 이루는 동인이 된다. 5.18 소설에서 재현된 모성에는 생명과 사랑과 더불어 죽음과 저주, 폭력과 공허가 공존한다. 모성 그 자체는 하나의 본능적 생명성을 간직한 개별자의 속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일상 속에서 자녀를 생명적 존재로 인식하며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인간 생명 자체를 새롭게 인식하는 모성 주체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5.18 소설에서의 모성의 정치성은 개별적 몸의 경험을 통해 윤리적 감각의 회로를 거치며 구축되었다. 모성의 윤리적 감각이 정치성과 접속되는 양상은 모성적/여성적 사유를 기반으로 정치적인 것을 재구축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다채로운 모성 주체의 모습은 숭고한 모성 신화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또한 이것은 공적인 기억으로 박제화될지도 모를 5.18의 역사적, 정치적 의미를재구성할 실마리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논문은 2010년대 이후 다시 한 번 펼쳐진 페미니즘 대중화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 페미니즘 대중화의 가까운 역사인 1990년대를 탐색한다. 두 시대 간 만남의 중심에는 ‘대중 페미니즘’이 ‘가시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여성 서사’ 또는 ‘여성 문학’의 영역에서 페미니즘 지식을 경합했던 역사가 있다. 여성 대중의 페미니스트 정체화는 ‘페미니즘적 주체’의 의미, ‘페미니즘적 재현’의 의미를 질문하는것으로, 나아가 이를 재구성하는 선언과 실천의 경합을 통해 이루어진다. 관련 영역에서 페미니스트들의 의미 투쟁이 끝없이 발생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며, 이들 경쟁의 결과는 역으로 ‘페미니즘 지식’이라는 지평 자체의 변형과 재형성에도 영향을 준다. 페미니즘 지식 투쟁은 ‘여성’ 일반의 집단적 가시화라는 페미니즘 부상의 초기 과제를 넘어, ‘어떤’ 여성을 재현의 장에 입장시킬 것인가를 둘러싼 경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돌이켜보면, 1990년대 한국 페미니즘/여성 문학 담론 역시 단순한 성공과 실패의 자리로서가 아니라 ‘가시성’의 문제로 재배치될여지가 있다. 특히 90년대는 페미니즘의 가시화와 동시에 안티 페미니즘의 반동적 대응이 횡행했던 시기일 뿐만 아니라, 가시성의 영역에서 페미니스트들 간의 지식/권력 투쟁 또한 활발히 이루어졌던 시기이다. 이때 90년대의 변화, 특히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력의 성장이라는 표면적 성취가 여성 대중의 ‘개인화’와 ‘가시화’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는 점은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는 소수 여성 지식인이 아닌, 다수 여성 대중의 급성장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들의 요구로 상상된 문제를 둘러싸고 지식 계층 간 의미 투쟁의 영역 또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여성문학’의 ‘대중성’이다. 이 논문은 공지영의 ‘대중성’이 여성문학 담론 내부에서 배치되고 이해된 방식을, 90년대 여성 문학이 여성 대중과 맺었던 관계의 모순을 지시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여성문학 비평에 의해 대중 페미니즘의 요청으로 이해된 공지영의 서사는 기실 대중 페미니즘의 서사적 요청과도, 여성주의 진영의 그것과도, 나아가 여성문학비평이 지향하는 대중성과도 충돌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대중성’ 혹은 ‘여성–대중’이라는 편의적 범주로 이해된 여성문학의 ‘대중성’이, 페미니즘 지식/의미 충돌의 장으로서 재구성될 여지를 시사한다.
1990년대 문학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는지, 그 재현의의미가 무엇인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은희경과 전경린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가이다. 은희경과 전경린의 초기 작품을 통해 1990년대적 특성에 대해 살펴보면서 특히,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지점으로 당시 성해방 담론의 영향력이 커가던 상황에서 그녀들의 작품 속 여성 인물이 취하는 섹슈얼리티가 재현되는 방식과 이것이 갖는 문학적 의의에 대해 살펴보겠다. ‘사랑’이라는 범주 안팎에서 이뤄지는 섹슈얼리티는 사랑이나 연애가 어떤권력 관계에 기초하는지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무성적이거나 남성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했던 상황에서 여성의 성욕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여성의 성적 쾌락과 만족이 무엇인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재구성하기란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래서 여성 문학은 지금까지 의미화하지 못했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서술해야 했고 1990년대에는 이에 대한 예술적 실험이 본격화된 시기라 할수 있다. 은희경은 『새의 선물』을 통해 사회의 지배적 정서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규범적 여성성이 가진 불합리함이 여성으로서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이유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추구하는 것은결국, 금기에 대한 도전이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런 금기에 대한도전은 결혼제도와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을 거부하면서 쾌락 추구를 위한 섹스, 사랑 없는 결혼도 가능하다는 도전으로 이어진다. 은희경의 초기소설은 금기에 대한 도전과 낭만적 사랑에 대한 회의, 그리고 단순한 쾌락추구를 위한 섹스 등을 통해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한다. 그리고 전경린은 가부장제와 규범적 섹슈얼리티를 위반하는 정념의 분출을통해 기꺼이 파탄을 향해 몸을 던지는 방식으로 여성 섹슈얼리티를 탐색한다. 전경린은 철저하게 불행하기를 감수하면서 온전한 자신으로 살기 위해 내면의 욕망에 충실하고자 심연의 저편을 향한 실천을 모색한다. 전경린은 규범적 세상에서는 죄가 될 수 있는 사랑을 하는데 죄책감이 없다. 그리고 현실의 파탄을 우회하지 않고 여성 섹슈얼리티를 추구하는데, 이는 여전히 모호하고 애매하지만 비유와 상징을 통해 전복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1990년대 여성작가들이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해 문학적 형상화를 시도했다는 것은 이전 시기 성해방담론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 여성작가의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재현은 그 의미가 덜 저항적이더라도 훨씬 현실에 가까운 방식으로 여성의 욕망과 현실을 반영한다. 남성에게 만족을 연기한다는 것, 관계와 섹스에 집중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신이 상처받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은희경의 생존전략이었다면, 전경린은 정념의 분출을 통한 가부장제에 대한 위반과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무정형의 희망을 보여줌으로써 온전한 자기가 되려 했다. 이는 각각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서 규범화된 여성성을 요구하던 시기, 이를 거부하고 금기를 깨고 위반을 도모하는 불안한 상상력의 재현 방식이었고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를 모색하는 과정의 출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동안 일본군은 죄악이라 할 수 있는 ‘위안부’ 제도를 실시했다. 이로 인해 한·중·일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수만 명의 여성들이 일본군의 성노예가되어 비참하게 짓밟혔다. 중국 항전문학에는 당시 일본군‘위안부’를 소재로 한작품들이 존재한다. 살펴보자면 이 작품들은 전문 작가 외에 학자, 기자, 고급장교 등 다양한 부류의 당대 인물들에 의해 창작되었고, 장르적으로는 소설, 한시, 르포문학과 가극 등을 포함하며, 내용적으로는 ‘위안부’의 피눈물이 담긴 비참한 생활에 대한 묘사 나아가 ‘위안부’의 저항과 각성에 대한 예찬도 들어있다. 한편 작품의 사상적 측면에서 보면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국제주의, 인도주의적 경향과도 결합된 특징을 드러내며, 일부 작품들은 5.4 신문화 운동 이래의 계몽적 경향을 그대로 갖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