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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OMS+ 및 학술지 리포지터리 설명회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서울분원 대회의실(별관 3층)
  • 2024년 07월 03일(수)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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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GLISH
  • P-ISSN1229-4632
  • E-ISSN2733-5925
  • KCI
손유경(서울대학교) pp.2-6 https://doi.org/10.15686/fkl.202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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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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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은경(서울대학교) pp.10-41 https://doi.org/10.15686/fkl.2021..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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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유엔아동권리협약(UN Convention on the R ights of the C hild)은 ‘아동의 권리’라는 개념을 다시 쓴 혁신적인 문건이다. 본고는 한국의 해외입양 역사를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해 이 협약을 꼼꼼하게 읽을 것을 제안한다. 해외입양을 논할 때 주로 거론되는 협약은 입양 절차에 대한 규약을 명시한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Hague Convention on Intercountry Adoption)이지만, 아동의 권리를 폭넓게 정의한 협약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이다. 따라서 본고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분석 대상으로 삼으며, 특히 이 협약 제7조와 제8조가 천명하는 아동의 ‘정체성을 보존할 권리’(right to preserve his or her own identity)를 집중적으로분석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하면 아동의 권리는 아동–부모–국가의 삼자 간 관계 속에서 성립하고 국가는 아동과 부모의 관계를 조정하고 중재할 책임을 갖는다. 국가는 아동의 ‘생명에 관한 교유의 권리’ 외에도 ‘정체성을 보존할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데, 이때 ‘정체성’이란 국적, 이름, 가족 관계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본고에서 살펴본 해외입양인 사례는 해외로 보내진 한국 출신 입양아동들이 이름, 국적, 가족 관계를 꾸준히 박탈당하였음을 증언한다. 디앤 보르쉐이림(강옥진), 아담 크랩서(신성혁), 카라 보스(강미숙)의 이야기는 해외입양 아동들이 특히 정체성의 취약성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아동권리협약의 주요 성과 중 하나가 ‘정체성의 취약성’에 대한 인정이라면, 본고는 ‘애도할 권리’라는 개념을 통해 ‘정체성을 보존할 권리’가 보충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아동의애도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정체성의 상실을 경험한 해외입양 아동의 경험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이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동시에 인정한다는 의미다. ‘정체성의 취약성’과 ‘애도할 권리’는 확장성을 갖는 개념으로, 한국의 해외입양 역사의 최대 피해자인 아동뿐 아니라 아동을 상실한 친모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미혼모를 중심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해외입양의 역사 속에 입양된 아동뿐만 아니라 아동을 입양한 친모의 애도할 권리 또한 부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Abstract

This essay examines the history of international adoption in Korea in light of the 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UNCRC) and argues that international adoption should be considered in light of the adopted child’s “right to preserve his or her identity” (as articulated in Articles 7 and 8 of the UNCRC) as well as the child’s right to mourn the loss of that identity. The UNCRC is an important document not only because it identifies the state as bearing political responsibility for the well-being of the child but also because it recognizes that the identity of the child needs special protection. Article 7 of the UNCRC defines “identity” as “including nationality, name and family relations as recognized by law”. The life histories of Deann Borshay Liem, Adam Crapser, and Kara Bos exemplify the loss of identity involved in international adoption. Instancing their cases as specific examples of the loss of name, nationality, and family relations, the essay argues that, despite the legal advances enabled by the UNCRC (1989) as well as the Hague Convention on Intercountry Adoption (1993), Korean-born adoptees continue to suffer from the traumatic loss of identity. Further, it argues the need to acknowledge their loss by recognizing their right to mourn their original identity and family relations. Recognizing the vulnerability of the child as including the vulnerability of his or her identity enables us to connect it to the vulnerability of the unmarried birth mothers who, like the children they are giving away, are unable to claim their social identities and are deprived of their right to mourn their losses.

김정은(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pp.42-68 https://doi.org/10.15686/fkl.2021..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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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글은 다문화가정의 여성과 아동이 겪는 돌봄의 어려움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상호문화 감수성과 동시에 여성주의 시각의 접근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결혼이주여성이 구술한 설화 중, 돌봄의 통제 욕망으로 ‘자연물이 된 아이’ 화소가 있는 필리핀의 「파인애플이 된 아이」 설화와 인도네시아의 「물고기 아내와 토바호수」 설화를 연구 대상으로 선정하여, 낯선 아시아 문화와 자연스럽게 상호문화를 소통하며 그 가치를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돌봄을 둘러싼 통제 욕망의 심층적 관계를 더욱 다양한 시야에서 풀어내고자 했다. 필리핀 설화 중 백 개, 천 개의 눈으로 ‘파인애플이 된 아이’의 상징을 교류하는 과정은 지나친 애정으로 아동을 돌보며 통제하는 모성 돌봄의 중압과 갈등 양상을 사유하게 한다. 인도네시아 설화 중 토바 호수 전설의 ‘섬이 된 아이’의 상징을 교류하는 과정은 아버지가 아들을 훈육하고 통제하고자 할 때의 폭력적 문제 양상에 대한 아들의 대응을 보여준다. 이를 다문화가정으로 확장하여, 현실적으로 돌봄의 과정에서 문화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주여성과 아동의 자존감을 변화할 수 있도록 상호문화의 주체로 인지해 가는 과정을 제안해 보고자 했다.

조연정(서울대학교) pp.69-101 https://doi.org/10.15686/fkl.2021..5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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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페미니즘이 실종되기 시작한 2000년대의 문학장에서 여성에의 억압과아동에의 억압이 중첩되는 지점을 살피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00년대 문단으로돌아가 이 글은 두 가지를 읽어내고자 했다. 우선 2000년대 문단이 문학의 전복적 상상력을 미학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긍정하는 과정에서, 당대 문학의 ‘여성혐오’적 태도가 묵과된 장면은 없는지, ‘폭력’이 재현되고 담론화하는 장면을 통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나아가 2000년대 미래파의 시들에서 여성주의적 가능성이 탈각된 사정은 없는지 ‘무성성’이 재현되고 담론화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장면들에 공통적으로 ‘여자–아이’들이 존재한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요컨대 이 글은 2000년대 비평이 ‘폭력’을 미화하고 ‘무성적’ 주체를 정치화하는과정에서, ‘여성’을 삭제하고 ‘아동’을 관념화한 점을 비판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나아가 2000년대의 다양한 여성 시인들의 시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재독해할 수 있다는 점을 김민정, 이민하, 김행숙의 시를 통해 확인하며, 2000년대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한국 여성주의 시의 계보를 추적하고자 하였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overlapping oppression of women and children in Korean literature in the 2000s, a period during which feminism began to disappear. To this end, this article attempts two tasks. First, I revealed that the “misogynistic” attitude that appeared in the works of the 2000s was overlooked in the process of appreciating the subversive elements that appeared in the works of the time. When violent scenes appeared in literature in the 2000s, I critically assessed how criticism in the 2000s praised these scenes for their aesthetic value. Furthermore, the article demonstrates that criticism of the time did not fully imply the feminist views in poems of the 2000s. To this end, this article looked at the process by which “genderlessness” was represented in poems of the 2000s. Most importantly, these scenes are similar in that they all feature girls. In short, the article tried to critically reveal how criticism in the 2000s aestheticized “violence” and politicized the “genderless” subject while erasing feminist views and understanding “children” only figuratively. Furthermore, I analyzed the poems of Kim Min-jung, Lee Min-ha, and Kim Haeng-sook from a feminist perspective and traced the genealogy of feminist poetry that survived even throughout the 2000s.

김젬마(인하대학교) pp.102-123 https://doi.org/10.15686/fkl.2021..5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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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글은 SF 아동청소년문학에 나타난 자신의 직업적 윤리의식과 모성 사이에서가치충돌하는 ‘엄마’라는 이름의 여성 과학자들을 살펴봄으로써 포스트휴먼 시대의 과학자–엄마 되기가 모성 이데올로기와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 분석하는것이 목적이다. 이를 통해 포스트휴머니즘이 인간중심적 사유를 지향하는 휴머니즘을 넘어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조망하는 보다 유연한 사고의 담론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모성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되고 혹은 강화되는지 탐색하고자한다. ‘여성 과학자’ 또는 ‘포스트모던 엄마 기계’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지닌 과학자–엄마들은 섹슈얼리티 외부에서 재생산이 가능한 존재로서 다양한 방식으로자신의 피조물을 생산 및 설계한다. 이들은 대개 생명공학, 유전공학, 로봇공학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루는 과학자이자 피조물을 창조하는 창조주로묘사되며 첨단기술과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실험실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재생산을 수행한다. SF 아동청소년문학에서 재생산기술에 대한 논의는 여성뿐만 아니라 아동의관점에서도 접근되어야 하는 부분인 만큼, 복합적이고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여성, 엄마, 과학자로서의 삶과 주체성, 행위 등이 모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자율성과 가능성이 배제되는 양상을 재현하는 한계와 더불어, 이들이 긍정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 지점들을 통해 다양한전망을 모색하는 보다 확장된 사유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양경언(서울예술대학교) pp.126-160 https://doi.org/10.15686/fkl.2021..5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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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고는 고정희 시인의 연작시『밥과 자본주의』를 ‘커먼즈(commons)’의 실천으로 독해하면서 해당 연작시의 의의를 탐구하기 위해 쓰였다. 커먼즈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문제에 맞서 다양한 주체들의 협동, 공유, 돌봄이라는 가치 추구 행위 및 이를 통해 질적으로 다른 사회로 가는 길을 만드는움직임을 이른다. ‘커먼즈’적인 실천의 필요성을 논할 때 주목할 작품이 고정희시인의『밥과 자본주의』연작이다. 본고는 리비스의 공동체론에 입각하여 구체화할 수 있는 문학의 커먼즈적인 속성에 따라 『밥과 자본주의』 연작을 독해한다. 이를 통해 해당 연작시가 공동체의 풍부한 토착 자원을 활용함으로써 ‘비개성의 영역’을 형성하고, ‘상호 협동적 창조성의 영역’을 구축한다는 것을 밝힌다. 2장에서는 연작시에 등장하는 ‘밥’이 공(公/共)과 사(私)의 영역을 넘어서서 ‘누구나’ 서로를 돌보는 비개성의 영역을 매개함으로써 여기에 참여하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하는 상황을 살핀다. 3장에서는 전통적인 ‘기도문’, ‘노래’의 형식이 다른 사회로 전환을 꾀하는 협동적 창조의 범례로 자리하는 상황을 읽는다. 본고는 1987년 이후 ‘여성 시인’의 변혁적인 시적 발화가 선취하는 급진성을새기면서, ‘함께 사는 삶’을 경시하다가 위기에 봉착한 오늘날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재초점화 한다.『밥과 자본주의』연작은 시가 쓰이고 읽히는 작업이 곧 공동체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면서 ‘우리’를 확장하는 ‘커머닝’의 일환임을 알린다.

이은영(경희대학교) pp.161-191 https://doi.org/10.15686/fkl.2021..53.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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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의 마당굿시는 경계를 넘나들며 현실을 투영함으로써 당대의 가부장적 질서와 군부독재에 의한 정치적 질서, 사회적 위계질서에 대해 긴장과 갈등을 유발한다. 이를 통해 구획화된 사회적 질서의 양상을 드러내 긴장과 갈등을 촉발한다. 마당굿시는 시인이 시의 형식적 변화를 통해 시대적 소명의식을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간구된 시의 양식이며 마당굿시의 내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1980년대의 사회적 상황을 점차적으로 가시화한다. 첫 번째, 두 번째 마당굿시에서 주술적화자가 불러내는 대상은 억압된 민중인 “우리 임”으로 나타나나, 세 번째 마당굿시에서는 구체적인 양상으로, 개별적으로 호명된다. 또한 마당굿시가 드러내는사회적 상황은 첫 번째 마당굿시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우리 임을 그리워하는 진혼의 형태로 드러난다면 두 번째 마당굿시에서는 현실 세계를 귀신 들린 상황으로 역설적으로 응시하여 1980년대 사회의 고정화된 몫의 질서에 균열을 가함으로써 보이지 않던 자들을 보이게 한다. 이후 세 번째 마당굿시에서는 기존의 지배질서를 고착화하고자 하는 정치적, 사회적 세력에 불화하며 목소리를분명하게 나타낸다. 노동자, 농민, 여성을 둘러싼 차별과 배제의 구조와 상황을보여주고, 군부 독재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군부독재에 대항하고 투쟁한 자들이 자신을 대변할 언어적 체계를 가지지 못했던, 차별의 사회적 구조 속에서 공동체의 중심에서 배제되었던 노동자들임을 재현한다. 그들은 권한과 능력이 없는 자로서, 몫이 없는 자로서 사회의 정치적 틀에서 배제되어왔지만, 분할된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계쟁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와 몫을 정당하게 주장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마당굿시는 우리의 사회가 이러한 불화의 힘을 통해 평등에 가까워지고 해방됨을 보여줌으로써 정치적 주체화의 새로운 형태를만들어 고정희의 시가 가진 정치성을 가시화 한다.

Abstract

Goh Jung Hee’s Madang-gut poem transcends boundaries and projects reality, causing tension and conflict between the patriarchal order, the political order caused by the military dictatorship, and the social hierarchy. Through this, the aspect of a compartmentalized social order is revealed, triggering tension and conflict. Madang-gut poem is a style of poetry that the poet sought as a way to emphasize the sense of vocation of the times through the formal change of poetry. And the content of Madang-gut poem gradually visualizes the social situation of the 1980s with the passage of time. In the first and second Madang-gut poems, the object sung by the magical narrator appears as “us” of the oppressed people, but in the third Madang-gut poem, in a specific aspect, they are individually called out. Also, the social situation that Madang-gut poem reveals is revealed in the first Madang-gut poem in the form of a remorse that longs for us at the borderline between life and death. However, in the second Madang-gut poem, by paradoxically staring at the real world as a haunted situation, the invisible is made visible by inflicting a rift on the order of the fixed share of society in the 1980s. After that, in the third Madang-gut poem, the voice is clearly expressed in discord with the political and social forces that are trying to fix the existing ruling order. It shows the structure and situation of discrimination and exclusion surrounding workers, peasants and women, and criticizes the military dictatorship harshly. And it reproduces that those who fought against the military dictatorship were workers who were excluded from the center of the community in the social structure of discrimination who did not have a linguistic system to represent them. Although they have been excluded from the political framework of society as people without authority and ability and without a share, they appear in the form of legitimately claiming their voice and share through a conflict that causes cracks in the divided world. And Madang-gut poem visualizes the politicity of Goh Jung Hee’s poetry by creating a new form of political subjectivization by showing that our society is closer to equality and liberated through the power of this discord.

이지영(충북대학교) pp.194-222 https://doi.org/10.15686/fkl.2021..53.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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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화자의 성별에 따른 상사뱀 설화의 구연 양상을 비교하고, 이를 성적 욕망에 대한 남녀의 인식 차이로 해석하였다. 상사뱀 설화는 상사병으로 죽은 남자가 뱀이 되어 사랑하는 여자의 몸에 들러붙는다는 남성 상사뱀 설화와, 남자를 사랑한 여자가 죽어 뱀이 되는 여성 상사뱀 설화로 나뉜다. 남성뱀 설화의 여성 화자는 상사뱀이 붙은 여성에 공감하면서 구술하는 반면, 남성 화자는 상사뱀에게공감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남성 상사뱀을 미리 방비한 이야기는 여성 화자들만구연했는데, 상사뱀에 대한 여성들의 혐오감이 표현된 것이다. 남성의 배신으로여성이 뱀이 되는 유형에서, 여성 화자는 약속을 저버린 남성에 대한 분노와 떠난남성을 기다리는 여성의 기다림을 자세하게 서술하였는데, 남성 화자는 여성의감정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여성이 남성을 짝사랑하다 뱀이 되는 유형은 남성 화자의 구연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남성 화자들은 여성의 구애를 거부하면 안된다는 시각을 보였다. 여성 화자가 구연한 남성뱀 설화에서 특히 뱀에 대한 혐오감이 두드러진 이유는 여성이 성폭행에 취약한 현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반면, 남성 화자들은 여성의 성적 욕망을 포용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조선시대 야담집에 나타난 사대부 남성의 시각과 유사하다. 남성이 향유한 텍스트에 표현된 여성의 성적 욕망은 여성이 아닌 남성의 욕망을 투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Abstract

Tales of lovesick serpents (sangsabaem) are divided into male snake tales and female snake tales. In male snake tales, men die for one-sided love and stick themselves to a woman’s body after becoming a snake. Female storytellers tend to sympathize with the woman who the snake sticks himself to, while male storytellers tend to sympathize more with the man who became a snake. Tales of a snake retreating due to a woman’s tricks were told only by women, and this reflects women’s aversion to lovesick serpents. In female snake tales, women who love men become snakes. Tales of women’s one-sided love were told mostly by male storytellers, and male storytellers expressed a view that woman’s sexual demands should be accepted. Women’s aversion to male serpents is linked to the real existence of the threat of sexual assault, while men who do not reject female snakes project their sexual desire through female snake tales.

한길연(경북대학교) pp.223-258 https://doi.org/10.15686/fkl.2021..5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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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유씨삼대록』의 ‘장혜앵’이라는 여성인물이 개과(改過) 이후 천선(遷 善)을 통해 독보적 인물로 거듭나는 과정의 서사화에 주목하여 『유씨삼대록』이장편소설의 개과천선 서사에서 이룩한 성과를 고찰하였다. 먼저 ‘유사 사건을 통한 시험대 통과하기’와 관련하여, 장혜앵 서사의 ‘미장아빔’인 장설혜 서사를 통해 장혜앵은 과거와는 다른 현재의 개과천선한 모습을 명시한다. 이는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 단계이다. 다음으로 ‘도덕성 고양을 통한 자질 현시하기’ 와 관련하여, 장혜앵은 자기 수양을 통해 성현군자인 진양공주를 대신하는 독보적 인물로 격상된다. 이는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기’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주변의 멸시를 관대한 처사로 넘어서기’와 관련하여, 관용적 태도로 미세한 혐오의 불씨마저 없애고 장혜앵은 가문의 총부로서의 모습을 확고히 한다. 이는 ‘독보적 존재로서의 마지막 관문 통과하기’ 단계이다. 요컨대, 17세기 말~18세 초 『유씨삼대록』은 ‘장혜앵’을 통해 개과한 여성이 시가에서 독보적 존재로 거듭나는과정을 전경화함으로써, 장편소설의 개과천선 서사에서 중요한 한 획을 긋고 있다. 인간의 본질 혹은 여성의 처지에 대한 작가의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노정하는가운데, 개과천선하는 인간 혹은 여성의 이상적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유씨삼대록』은 그 의의가 크다.

Abstract

This thesis focused on the narrativization of the transformation of Jang Hye-aeng, the female character of Yussisamdaerok (劉氏三代錄), who is reborn as an unrivaled member of her husband’s family through repentance and reform. Through this, I attempt to consider the achievements of Yussisamdaerok in the narrative of repentance and reformation. To this end, I divided this survey into three categories: 1) passing the test through similar cases, 2) showing qualities by enhancing morality, 3) and generous treatment of the contempt around her. First, “passing the test through similar cases” may be summarized as follows. The narrative of Jang Seol-hye, which appears as a mise en abyme of the narrative of Jang Hye-aeng, serves as a mirror reflecting the narrative of Jang Hye-aeng. Jang Hye-aeng is clearly differentiated from Jang Seol-hye with her fair demeanor, making her appear clearly different from her past sinful self. This can be said to be an epic device that embodies the step of ‘escaping from the past’. Second, the following is related to “showing qualities by enhancing morality.” Through moral discipline and an excellent performance, Jang Hye-aeng emerges as an unrivaled figure replacing the vacancy of Princess Jinyang, the most ideal figure in Yussisamdaerok. Jang Hye-aeng, who was enlightened by Princess Jinyang’s teaching, is now revered by the family as an incarnation of Princess Jinyang. This can be said to be a step toward a ‘rebirth as a new self’. Third, the “generous treatment of the contempt around her” can be explained as follows. Jang Hye-aeng establishes her status as the eldest daughter-in-law of the family by eliminating the lingering embers of hatred. Due to her previous behavior, Mrs. Sun gives a look of contempt and disgust. However, Jang Hye-aeng, through her extremely generous and polite behavior, sheds the shadow of such hatred and establishes herself as the eldest daughter-in-law of the Yu family in name and reality. This functions as the step of “passing through the last gateway as an unrivaled being.” In short, Yussisamdaerok marks an important milestone in narratives of repentance and reformation in the late 17th and early 18th centuries by portraying the process of becoming an unrivaled member of one’s husband’s family through the female character of Jang Hye-aeng. It is not uncommon for a woman to correct her mistakes in full-length novels, and it is a remarkable achievement that depicts a woman who is reborn as an exceedingly unique person. These observations are based on the author’s deep awareness of human nature and the situation of women. It is significant in that it presents the most ideal model of human beings who are striving to improve themselves.

소영현(연세대학교) pp.259-293 https://doi.org/10.15686/fkl.2021..5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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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전후, 사회의 계급적·젠더적 전환이 이루어졌다. 계급적·젠더적 위계체제에 의한 근대적 개인의 복합적 분할과 재구축은 순차적인 것이라기보다 문화적 풍경 변화와 함께 이루어지는 동시적이고 상호적인 과정이었고, 실질적으로는 섹슈얼리티를 중심으로 한 관계적 특성으로서 가시화되었다. 자유연애가시대사조가 된 1920년대 이후로 풍기문란을 우려하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성교육과 성에 대한 ‘과학적 지식’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새로운 지식이자 근대적 지식 체계로 수용되면서, 욕망의 과학인 성과학은 근대적 남녀관계의 변화를생물학적 성차로 설명하면서 성별 차이를 자연화하였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가정이 파탄 상태에 놓이고 성적 혼란이 극에 달했다는 판단, 즉 사회제도가일대 과도기를 맞이했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접어드는 동안, 성을 둘러싼 인식과 사회제도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 젠더적전환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본고에서는 서사물과 인쇄 매체의 기사들, 여타 출간물을 대상으로,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걸쳐 성을 둘러싼 인식과 사회제도에 있었던 변화를, 고백의 형식을 통해 성적 욕망이 발견되고 그것이 성교육의 대상으로 변용되는 과정에서 ‘음란한 것’이 구성되는 과정을 통해 고찰하였다. 위험한 것으로서의 성 문제가 개인의 삶을 작동하게 기본 원리가 되는 장면들을 검토하면서, 섹슈얼리티가 개인과 사회, 민족(/국가)를 구축하는 인식적 저변을 이루는 동시에 섹슈얼리티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재편이 일어나고 있었음을확인하였다.

Abstract

Around the 1930s, a class and gender shift in society took place. Rather than a sequential process, the complex division and reconstruction of modern individuals by class and gender hierarchies was a simultaneous and reciprocal process that occurred alongside changes in the cultural landscape, and it became visible in society as a relational characteristic around sexuality. Since the 1920s, when romantic love became a trend, intellectuals who were concerned about sexual disorders vocalized the need for “scientific knowledge” about sex and sex education. Accepted as new knowledge and a modern knowledge system, sexology, the science of desire, naturalized gender differences by describing changes in modern relationships between men and women as biological sex differences. Once the 1930s began, there was widespread recognition that the social system was in a transitional period; that is, there was an awareness that families were in a state of bankruptcy and that sexual chaos had reached its peak. What happened to the formation of discourses and social systems surrounding sexuality in the 1920s and 1930s? This paper analyses narratives, print media, and other publications to identify changes in the recognition of sexuality and the social system surrounding in the 1920s and 1930s. The paper simultaneously identifies the existence of sexual desire through forms of confession, and reveals the process whereby “the obscene” was constructed and made into the target of sexual education. By analyzing scenes where sexuality as a threatening force is constructed as the basic principle of an individual’s life, this paper confirms that sexuality was employed to construct an epistemic base for the individual, society, and the nation(/state) alongside a reorganization of society centered on sexuality.

김복순(명지대학교) pp.294-339 https://doi.org/10.15686/fkl.2021..53.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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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Abstract

4.19 이후 리저널리즘의 재편 요청과 관련하여, 『청맥』의 ‘제3방안’은 아시아 리저널리즘의 제5계보를 제시한다. 제5계보란 반둥정신을 체화한 것으로서, 반제반식민과 ‘자유로서의 발전’론이 결합한 형태였다. 당대 잡지 중 이에 속한 경우는 『청맥』이 유일하다. 이 계보에서는 ‘빵과 자유’를 동시에 요청하면서 발전의목적으로 ‘자유·민주의 신장’을 역설하였으며, 미국에 대해 객관적 시선으로 천착하고자 했다. 이러한 입장은 문학비평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청맥』에서는 이식문학론·전통부정론을 강렬하게 부정했다. 남의 눈(義眼)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문학을의안문학, 매판문학이라 맹렬히 비판하였고, 서구화=근대화의 관점을 공격하면서 ‘또 다른 보편’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통부정론과 이식문학론은 추녀 콤플렉스로 명명되었다. ‘주체성 없음’을‘성적으로 은유’하는 것으로서, 남성/여성=선/악=미/추의 이분법 하에 배치되었다. 『청맥』은 서구(일본)문학을 타자화하여 한국문학의 정체성 및 주체적 민족문학을 수립하고자 했으며, 그 수단으로 ‘여성(성)’이 ‘부정적’으로 동원되었다. ‘추함’이 예로부터 성의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는 점에서 추녀 콤플렉스는 ‘이중적’으로 문제적이다. ‘슬픈 메타포’로서, 추녀 콤플렉스는 주체성을 강조했던 반둥정신과 호몰로지였다. 조동일은 민족적 리얼리즘론 및 새로운 ‘문학사 방법론’을 주창하였다. 여기서 여성은 이중삼중의 당대 모순의 최대 피해자인 동시에, ‘문학의 주체’ ‘해방의주체’로 자리매김되어 있었다. ‘여성문학’의 범주를 설정함으로써 여성은 더이상‘한국학의 타자’가 아니었다. ‘여성문학비평적 민족문학론’의 계보를 창출해 보여 주는 등 혁명적인 사유의 대전환을 노정하였다. 『청맥』의 참여론은 참여에 대한 ‘이론적 고찰’뿐 아니라 ‘방법론’까지 제시하고 있었으며, 그 자체가 민족문학론 및 리얼리즘론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백낙청의 참여론은 다른 논자들과 ‘매우 다르게’ 민족문학론적, 리얼리즘론적 성격을거의 띠고 있지 않았다. 백낙청은 비젠더적이었지만, 나머지 논자들은 남성중심적이었다. 여기서 여성은 참여·실천 및 행동의 주체도, 인식주체도 아니었다. 역사의 주체는 남성일 뿐 여성은 이에서 ‘소거’되어 있었다. 『청맥』의 특징 중 또 다른 하나는, 조동일의 업적 외에도, 여성문학 비평가를발굴·소개하고 여성노동문학의 가능성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여성문제의 특수성을 피력하는 등 여성문학비평의 가능성을 확인시키고 있었으며, ‘여성 노동 수기’라는 장르를 설정하여 여성노동자를 기록의 주체, 역사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이상 『청맥』의 비평으로 1960년대 문학(비평)의 독자성이 확보되었다. 『청맥』은 이미 1960년대 중반에 리얼리즘을 핵심 창작방법론으로 제시하고 있었으며, 민족문학론과 더불어 리얼리즘을 논의의 ‘중심’으로 재점화해 내고 있었다. 따라서 『청맥』의 민족문학론을 『창작과 비평』의 전사(前史)로 평가한다거나, 리얼리즘 및 민족문학론의 계보를 카프에서 해방 직후를 거쳐 『창작과 비평』으로설정하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부적절한 평가이다. 그간 부당하게 ‘전유’ 되어 온 『창작과 비평』에 대한 비평사적 오류는 수정되어야 한다. 『청맥』은 1960년대의 가장 진보적인 잡지였지만, 젠더 인식이 통일되어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여러 논자들의 ‘주체’ 개념에 여성(성)을 배치하고 있지 않아, 진정한 ‘주체’, ‘해방’과는 ‘아직’(not-yet) 거리가 있었다. 『청맥』의 필자들은 타 잡지에서도 활동하였으나, 가장 문제제기적이고 날카로운 핵심적 내용의 글은 『청맥』에 게재하였다. 『청맥』의 비평은 ‘잃어버린 진보의 꿈’이 아니라 ‘새롭게 건축되는 진보의 현실’ 그 자체였다.

표유진(이화여자대학교) pp.340-367 https://doi.org/10.15686/fkl.2021..5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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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희의 신문연재소설 『불타는 신전』(『조선일보』, 1965.1.1-1965.11.21)은1950년대 정연희 단편소설의 실존주의적 성격과 1960년대 정연희의 다른 장편소설의 여성주의적 성격이 교차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남성 중심적인 전후문학장의 주류인 소위 본격문학과 주변으로서의 대중문학의 장르적·젠더적 이분법을 교란하는 『불타는 신전』의 서사적 특수성은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사적 배경속에서 여성인물의 성적인 수난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면서도 전후문학과 멜로드라마의의 재신성화를 위한 전형적인 여성수난서사를 비틀어 한 인간으로서실존적 자아를 확립해나가는 청년 여성과, 사랑을 통해 고독과 허무를 이겨내는공동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있다. 『불타는 신전』은 전쟁을 여성의 실존적 자각과 타자성의 자각을 이루는 계기로 형상화하며, 여성주체들이 사랑을 통해 모성을 재의미화하고 관념화된 사회제도에서 벗어난 ‘이브’들의 여성동성사회적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혁명이 실패하면서 자매애적 공동체도 와해되지만, 이는 오히려 세계와 관련될 수밖에 없는 실존적 조건을 상기시킨다. 뿐만 아니라 『불타는 신전』은 반복되는 여성수난의 플롯을 근대의 직선적 진보와는 다른 방식으로 운동성을 갖는 나선형의 플롯으로 새롭게 구조화함으로써 실존적 주체로서의 청년 여성의 투지를 형상화한다. 이는 1960년대 중반의 시점에서 사랑, 전쟁 그리고 혁명을 문학을 통해 여성이라는 타자의 시선에서 재사유하는 여성작가의 독창적 시도로서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

Abstract

Jeong Yeon-hee’s novel The Burning Temple is a unique novel that exists at the intersection of the existentialism of Jeong Yeon-hee’s 1950s novels and the feminism of Jeong Yeon-hee’s other serial novels from the 1960s. The novel The Burning Temple disrupts the gender and genre binary separating male-centered mainstream postwar literature and marginalized popular literature. The narrative structure of this novel is unique because it centers the narrative on women’s sexual hardships within the context of the Korean War. Simultaneously, the novel tells the story of a young woman who establishes her existential self, an approach that departs from the typical narratives of women’s hardship that sought the re-consecration of postwar literature and melodrama. In addition, the story points toward the potential for community to overcome hardship and emptiness through love. The Burning Temple depicts war as an opportunity for women to achieve existential awareness and objectified female awareness, and it depicts the process of female subjects re-emphasizing motherhood through love and forming a female homo-social community of “Eve,” which deviates from the ideological social system. The failure of the lovers’ revolution leads to the collapse of the sisterhood community; however, this reminds us of the existential conditions that forced us to struggle with the world due to the impossibility of existing outside the system. Furthermore, The Burning Temple represents the determination of young women as existential subjects by restructuring the recurring plot of women’s suffering into a spiral plot with motility in a way that differs from modern, straightforward progress. This approach is significant in literary history, as it constitutes an original attempt by a female writer to re-emphasize love, war, and revolution in the eyes of an objectified woman through literature in the mid-1960s.

이소연(연세대학교) pp.368-390 https://doi.org/10.15686/fkl.2021..53.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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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의 소설에 등장하는 ‘어머니’들은 가정이라는 식민지 내부에 갇혀서 근대적 모성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에게 강요된역할에 저항하는 한편 억압적 이념으로부터 탈주하려는 시도를 계속한다. 혼돈과 길 찾기,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모순적인 수행이 불러일으키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한 작중인물들은 스스로를 일그러진 기형적 존재,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괴물로 인식한다. 오정희의 여성 괴물들은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평가절하된 비체(abject)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의 법을 전복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지닌 존재로서 경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오정희 소설 속 어머니들은 비체의 형상으로 재현될 때조차도, 아이들에게 생명을 주는 동시에 앗아가는 원초적 어머니의 냉혹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어머니들은 남성성을 위협하는 두려운 거세자이자 성의 경계를 허무는 잔혹한 파괴자인 ‘여성 괴물(monstrous-feminine)’로서 재현된다. 오정희의 소설 속의 여성들은 새로운 범우주적(cosmic) 상상계를구축하기 위해 변신을 계속하는 과정적인 존재다. 이러한 시도는 인간/휴먼이라는 근대적 이념형을 해체하고 한계 바깥에서 새로운 존재의 근거를 발견하려고하는 탈인간(posthuman) 즉 포스트휴머니즘적인 전망과 연결된다.

Abstract

“Mothers” in Oh Jung-hee’s novels are trapped inside the colony that is the family and live a life of submission to modern maternal ideology. However, they resist the role they are forced to play, while continuing their attempts to escape from oppressive ideologies. The characters are caught in paradoxical situations caused by the contradictory performances of chaos and a way forward, and destruction and reconstruction. They perceive themselves as distorted and deformed beings—that is, as monsters abandoned by society. Therefore, the monstrous women depicted in Oh’s novels are also seen as paradoxical beings. Oh’s female monsters are considered abject beings who have been abandoned and devalued by society. However, they are simultaneously feared as powerful beings who can overthrow the law of the father. Even when the mothers in Oh’s novels are reproduced as something that is abject, they reveal the cold-blooded mother who both gives her children life and takes it away. Mothers who actively seek to become monsters appear to be fearful castrators who threaten masculinity and cruel destroyers who break the boundaries of the castle. The mother is recreated as the “monstrous-feminine” that “shows fear because of her body and production functions, especially her nature as a mother.” Oh’s novels should be interpreted as a journey to discover the power of a forgotten mother, breaking the prejudice of society that has regarded women as abject. The attempt to form one’s identity against a world that oppresses the self is closely linked to posthumanism, which attempts to dismantle the modern ideological form of man/humanity and identify a new basis for existence outside existing limits.

유효만(서울대학교) pp.391-417 https://doi.org/10.15686/fkl.2021..53.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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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영화 「꽃잎」과 「슈슈」의 서사전략을 비교함으로써 한국과 중국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에 관한 대중기억이 어떻게 구축되었는지를 고찰하였다. 한국 영화「꽃잎」은 소녀의 히스테리적 증상을 통해서 ‘5·18 광주’로 인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영상화시키는 작품이다. 기억상실, 실어증, 그리고 히스테리적 발작 등 소녀의영상 이미지에는 은폐되고 호도되었던 80년대 ‘광주’에 관한 대중기억이 함축되어 있다. 이와 달리 중국 영화 「슈슈」는 트라우마적 경험에 대한 재연이다. 천진난만에서 편집증 성향이 보인 이미지로 타락한 소녀 슈슈를 통해서 ‘문혁’에 휘말린 ‘즈칭’(知青) 전체의 비극적 운명이 재현되고 있다. 비록 두 편 영화의 재현방식이 다르지만 어린 소녀의 이미지를 통해서 정치적 폭력에 짓밟힌 대중의 역사적 트라우마가 형상화된다는 점은 유사하다. 두 영화는 개인의 기억/경험을 집단적인 트라우마로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모두 ‘소녀–화자–중년남자’의 삼각 구도를 선택하였다. 민중을 대표하고 있는 장씨가 소녀의 트라우마를 자신의 몸에옮겨서 죄의식의 몫을 담당했다면 거세된 소속민족인 라오찐은 소녀를 구원하는신격화된 이미지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이로써 「꽃잎」과 「슈슈」는 부채의식과 자기처벌을 통과한 집단적 책임감이 형성되어 정치적·윤리적 주체로 나아가는 과정을 재현함으로써 한국과 중국의 트라우마의 극복방식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여준다. 두 편 영화의 차이점은 90년대라는 시공간에서 ‘즈칭’과 ‘386세대’ 가 문화적인 성찰을 한 결과와 관련 있다고 볼 수 있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how popular memories of historical trauma have been constructed in Korea and China by comparing the narrative strategies of the films A Petal and XiuXiu: The Sent-Down Girl. A Petal represents the historical trauma of the Gwangju Incident through the hysterical symptoms of a girl. The girl’s amnesia, aphasia, and hysterical seizures are a metaphor for the concealed and misleading popular memories of Gwangju in the 1980s. In contrast, the movie XiuXiu is a representation of traumatic experiences. By recreating Xiuxiu’s process of degenerating from a state of innocence to a state of paranoia, she portrays the tragic fate of all of the “educated youth” caught up in “the Cultural Revolution.” Although the methods of representation are different, both films recreate the historical trauma of the people traumatized by political violence through the image of a girl. Both the hysterical girl in A Petal and the obsessed girl in XiuXiu are objectified as victims in these historical narratives. In addition, both films employ a triangular structure composed of a “girl-narrator-middle-aged man” in the process of reconstructing individual memories/ experiences into collective trauma. The subaltern Mr. Jang takes on part of guilt himself by transferring the girl’s trauma into his body. In this way, a sense of collective responsibility is formed through guilt and punishment, leading to a political and ethical subject. By reproducing the process of forming a sense of indebtedness and collective responsibility through guilt and self-punishment, the films A Petal and XiuXiu demonstrate different approaches to overcoming trauma. This difference can be seen as the result of the cultural reflection of “educated youth” and the “386 Generation” in the 1990s.

허윤(부경대학교) pp.418-442 https://doi.org/10.15686/fkl.2021..5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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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거듭나면서 케이팝이 재현하는 남성성역시 트랜스내셔널하게 발신되고 있다. 잘 훈련되고 통제된 마른 몸으로 대표되는 케이팝 아이돌의 몸은 세계 시장에서 퀴어한 남성성으로 독해된다. 그러나 한국의 아이돌은 퀴어한 신체에 잘 훈육된 젠더 규범이 체현되면서 완성된다. 즉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혼성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케이팝 아이돌이었던 박재범의설화 사건은 이 경계에서 충돌하는 케이팝의 좌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후 한국에 복귀한 박재범이 남성연대와 진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힙합 아티스트가 되었다는 점은 미국에서 성장한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맞물려이해될 수 있다. 소수인종은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과잉 수행함으로써 주체로 거듭나고, 이는 힙합의 남성성 서사와 성공적으로 결합된다. 그런데 소수자로서 박재범의 행보는 케이팝 산업과 충돌한다. BLM 운동과 같은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인종차별 문제를 고발한다. 이러한 방식은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케이팝의 규범과 충돌하면서 여러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케이팝이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마케팅을하고, 일종의 ‘모델 아시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 이러한 규범성과소수자성의 길항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Abstract

As K-pop has emerged as a representative cultural product of Korea, the masculinity that K-pop reproduces is being exported to the global market on behalf of Korea. The bodies of K-pop idols, which are typically well-trained, disciplined, and skinny, are read as “queer” masculinity in the global market. However, Korean idols embody well-disciplined gender norms contained within the “queer” body. The story of former K-pop idol Jay Park also demonstrates the multiple trajectories of K-pop, which collided at the intersections of normality and queerness. The fact that Jay Park, who later returned to Korea, became a hiphop artist featuring male solidarity and sincerity can be understood in conjunction with his identity as an Asian-American who grew up in the United States. Ethnic minorities are reborn as subjects who perform surplus hegemonic masculinity, which is successfully combined with masculine hip-hop narratives. As a minority, Jay Park’s actions have conflicted with the norms of the K-pop idol industry. He actively speaks about political issues such as the BLM movement and raises the subject of racism as a Korean American. This has caused several repercussions for Jay Park, as his outspokenness clashes with K-pop’s implicit norm of not talking about political issues. If K-pop is marketing to the global market that also plays the role of a kind of “model Asian,” then the time has come to critically assess such normality and the future path of the minority.

김수아(서울대학교) pp.443-475 https://doi.org/10.15686/fkl.2021..53.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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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2010년대 후반부터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반 페미니즘 주장이 우세해진 가운데 일어난 ‘메갈 손가락 기호 논란’을 둘러싼 담론을 분석하였다. 언론 보도를 기초로 하여 주요 행위 장인 언론, 정치,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지식 서비스, 청와대 청원에서 담론의 주체와 대상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었다. 페미니즘이라는대상은 부정의한 사상 체계로 개념화되었고, ‘남성혐오’ 사상인 페미니즘에 분노한 20대 남성이 윤리적인 관점에서 소비자 운동을 통해 공정을 실현한다는 담론이 형성되었다. 정부와 여당, 진보 세력은 이러한 공정의 담론을 외면해왔다고 정의되었고, 기계적 균형과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공정 개념이 페미니즘을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시되었다.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지식 서비스는 페미니즘을성평등에 반대하는 부정의로 개념화하고, 이제까지 남성들이 남성혐오를 견뎌왔다는 ‘우리 내러티브’를 형성하면서 소비자 시민주의라는 집단 행위성을 구축하였다.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재맥락화를 비판하면서 페미니즘의 의미를 재구축하기 위해 논의되어야 할 쟁점들에 대해 논의하였다.

Abstract

This article clarifies the context in which anti-feminist arguments have prevailed in online spaces since the late 2010s. By applying the discourse-historical approach, this article analyzed the discourse surrounding megal and the finger controversy. Through an analysis of media reports, this paper reveals the key agents in the field of discourse that is constituted by the media, politics, social media, online knowledge services, and Blue House petitions. In this discourse, feminism has been conceptualized as a system of unfair ideas. Moreover, a discourse has formed whereby men in their twenties who are angry at feminism and claim to be victims of ‘misandry’ have sought to build a consumer movement based on ethical beliefs in order to bring about justice. It has been argued that the ruling party of the government and progressive powers have turned away from the discourse of fairness, and the opposition party has in turn conceptualized fairness as mechanical balance and competition, which is offered as an alternative to feminism. Social media and online knowledge services have conceptualized feminism as being against gender equality, and men have formed a “we narrative” about how men have endured ‘misandry’, and they have built a capacity for collective action centered on consumer civic-mindedness. These discussions criticized the negative recontextualization of feminism and identified points that must be debated to reconstruct the meaning of feminism.

오현지(고려대학교) pp.478-497 https://doi.org/10.15686/fkl.2021..53.478
이문우(연세대학교) pp.500-508 https://doi.org/10.15686/fkl.2021..53.500

여성문학연구